김진영 스틸기사
김진영 스틸기사
김진영 스틸기사

[텐아시아=정시우 기자]사진 한 장이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담아낼 때가 있다. 김진영 스틸기사의 사진이 그렇다. 그의 작업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진이라는 것이 단순한 현장 기록을 넘어 영화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의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혹자는 ‘스틸사진의 역할은 영화의 바람잡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의 스틸은 바람이 아니라 폭풍일 것이다. 지난해 개봉한 ‘인간중독’을 떠올려 보라. ‘인간중독’에 대한 관객의 기대치가 극점에 달했던 시기는, 장담하건대 김진영 스틸기사의 손끝에서 탄생한 티저 스틸이 공개됐을 때였다.

‘자유의 언덕’(2014) ‘인간중독’(2014) ‘남자가 사랑할 때’(2013) ‘몬스터’(2013)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우리 선희’(2013) ‘마이 라띠마’(2012) ‘분노의 윤리학’(2012)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 ‘이웃사람’(2012), ‘다른나라에서’(2011) ‘북촌방향’(2011) ‘심장이 뛴다’(2010) ‘돌이킬 수 없는’(2010) ‘부산’(2009) ‘짝패’(2006)

Q. 어떻게 이 길에 들어서게 됐나.
김진영:
고등학교졸업 시점까지 진로의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땅히 하고 싶은 직업도 가고 싶은 학교도 없었다. 그나마 힘이 되던 영화를 떠올리며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는데 떨어진 후, 영화의 기초인 사진으로 방향을 돌렸다. 졸업 후 영화 포스터 작가의 어시스턴트로 들어가면서 이쪽 일을 하게 됐다.

Q. 스틸기사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작품 혹은 사람이 있다면.
김진영:
인물사진에 있어 양극단에 있는 강영호 작가와 오형근 작가의 초기 사진들을 좋아한다. 가장 상업적인 사진을 보여줬던 강영호 작가의 데뷔 및 초기작(‘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파이란’, ‘인터뷰’, 정우성, 전지현의 지오다노 광고)과 한국 인물사진에서 주요 지점에 있던 오형근 작가의 사진(이태원 시리즈, 아줌마 시리즈, 광주이야기, 소녀연기)을 특히 좋아했다. 두 분 모두 한국영화 포스터 작가로서 감성적이고 힘 있는 사진들을 남기셨다. 대학 졸업 시점에 어시스턴트를 자청하며 찾아뵀는데, 강영호 작가님과 인연이 닿아서 그 분 밑에서 3년 정도 있었다.

Q. 처음으로 스틸을 담당한 영화는 뭔가.
김진영:
류승완 감독님의 ‘짝패’다. 강영호 작가님 어시스턴트로 있을 때였는데, 당시 강영호작가님이 포스터를 찍으시고 그 밑에 있는 실장님들이 스틸을 소화하셨다. 당시 실장님이 ‘짝패’와 ‘중천’을 계약하셨는데 두 영화 촬영기간이 겹치면서 실장님이 ‘중천’으로 가고, 내가 어시스턴트인데도 불구하고 ‘짝패’ 스틸을 담당하게 됐다.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아서 사고도 많이 내고 혼도 많이 났다.(웃음) 하지만 내가 내 것을 찍을 수 있다는 것에 ‘업’ 돼서 신나게 했다.

김진영 스틸작가의 스틸을 이용한 ‘북촌방향’ 포스터와 ‘인간중독’ 티저 포스터
김진영 스틸작가의 스틸을 이용한 ‘북촌방향’ 포스터와 ‘인간중독’ 티저 포스터
김진영 스틸작가의 스틸을 이용한 ‘북촌방향’ 포스터와 ‘인간중독’ 티저 포스터

Q. 작업물 중에 잊기 힘든 한 장면을 꼽는다면.
김진영:
홍상수 감독님과 첫 작업을 했던 ‘북촌방향’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소수의 인원으로 영화를 만드시는 홍상수 감독님에게 스틸 인력은 영화 완성에 있어 그리 필요한 부분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감독님의 영화 포스터를 찍는 게 꿈이었던 나는 스틸 뿐 아니라 현장의 부족한 손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과 면접에 통과하며 작업에 합류할 수 있었다. 감독님 현장은 여타의 상업영화와 달리 그 어떤 가이드라인이 없다.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이유다. 그때 수첩에 적었던 글들을 지금도 가끔씩 꺼내보는데, ‘이전에 없는 다른 느낌의 사진’을 찍어서 보여드리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얼굴 위주의 획일적인 포스터 사진보다는 풀샷 느낌의 시원한 걸 원하셔서, 멋 부리지 않는 정직한 앵글에 신경을 썼다. 촬영 전 식사자리에서 감독님이 주셨던 몇 잔의 술기운을 빌어 더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순간의 컷들을 담아낼 수 있었다.

Q. ‘북촌방향’을 시작으로 홍상수 감독님의 작품을 꾸준히 찍고 있다. 말했듯 홍상수 감독님 영화는 소수정예로 촬영이 이뤄진다. 시나리오도 당일 날 나오는 경우가 많은 걸로 아는데 그런 것들이 스틸사진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김진영:
현장 자체의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홍상수 감독님 현장에서는 좀 더 다큐멘터리적인 사진 결과물들이 많이 모인다. 당일 나오는 대사를 외우느라 ‘멘붕’인 배우들의 아침 풍경, 업무의 경계를 넘나드는 배우와 스태프들, 필요할 땐 스태프를 자처하는 배우 등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순간들이 카메라에 담긴다. 나 역시 공식적으로는 스틸 작가지만 감독님 작품에서는 1인 다역을 소화한다. 어떤 날엔 조명부였다가 어떤 날엔 연출부로, 또 어떤 날엔 제작부 스태프가 된다. 사진 촬영보다 스텝으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순간도 있다.(웃음) 다른 일을 하다보면 사진을 찍을 수 없기에 처음에는 좋은 순간을 놓치는 게 아닌가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새는 그냥 눈으로만 찍고 만다. 여긴 화보 찍는 현장이 아니라, 진짜 영화의 순간들이 살아 숨 쉬는 현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즐기고 있다.

Q. 스틸기사로 보는 배우는 다를 것 같다.
김진영:
배우분마다 순간에 집중하는 방법이 다르다. 감독의 큐 사인 전에 감정의 시동을 거는 배우가 있고, 큐 사인이 난 후에야 연기를 시작하는 배우가 있다. 사진에 담기에는 전자가 편하다.(웃음)

Q. 국내외를 막론하고, 큰 자극을 준 한 컷이 있다면?
김진영:
김지운 감독님의 ‘악마를 보았다’ 해외포스터 컷. 지금도 가끔씩 들여다보는데, 처음 봤을 때의 그 기운이 느껴진다. 참, 효과적인 한 컷이었던 것 같다. 디자인이 좀 가미되긴 했지만, 이미지만으로 영화의 숨어 있는 정보까지 모두 담아내지 않았나 생각된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메인포스터 속 스틸 컷 역시 참 멋진 ‘한방’ 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진영 스틸기사
김진영 스틸기사
Q. 촬영현장에서 스틸을 찍다보면 여러 눈치를 봐야 할 거다. 배우가 꺼려하면 마음껏 셔터를 누를 수 없고, 카메라 동선 때문에 제한된 자리에서 현장을 찍을 수밖에 없을 텐데 이런 것들은 어떻게 조율하나.
김진영:
현장에서 스틸기사는 사이드 스태프라고 생각한다. 사진이 마케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긴 하지만, 영화 완성의 기여도에 있어 촬영이나 조명과 동일선상에 있다고 보긴 어렵다. 이 큰 전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본인에게 유리하지 않은 현장이 항상 불만일 수밖에 없을 거다. 배우와 현장 컨디션에 치이고 눈치 봐야하는 하는 것은 스틸기사의 숙명이다. 사진으로 주인공이 되려면 잡지화보 등의 무대로 옮겨가야 한다. 하지만 제한된 여건에서 영화를 대표하는 또는 기억할 수 있는 사진을 건져 내는 건 다른 사진 장르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인 것이 사실이다. 영화 현장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그 씬과 테이크를 반복할 수 없다. 계속해서 현장을 주시하고 배우 스태프들에게 믿음을 심어줌으로서 좋은 시간에 사진을 찍어 내는 게 관건이다.

Q. 배우나 스태프들과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겠다.
김진영:
맞다. 좋은 현장을 만나면 영화가 개봉하는 시점에 앨범을 만들어서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선물을 드린다. 배우들에게는 셔터소리가 연기에 방해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배려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스태프들에게는 함께 고생한 것을 추억하는 마음으로 드린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처럼 스틸기사가 현장에서 부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카메라인 것 같다. 그 앨범과 사진들이 그들과 다른 영화 현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가장 좋은 다리가 되어준다.

Q. 어떤 마케터는 ‘스틸 사진은 마케팅의 무기다’라고 했다. 김진영이 생각하는 스틸사진이란.
김진영:
영화는 스틸사진 컷 공개와 함께 시동이 걸린다. 관객들이 영화를 처음 인지하는 것이 스틸 컷이기 때문에 어떤 스틸 컷이 공개되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첫인상이 굳어진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영화 포스터의 경우 강영호 이전호 오형근 윤형문 등 전문 영화 포스터 작가가 담당하던 시절이 있었고, 조선희 홍장현 보리 박지혁 등 패션을 베이스로 하는 사진작가가 포스터를 왕성하게 찍던 시점도 있었다. 두 가지 모두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점점 배우들을 스튜디오로 따로 불러들여 포스터를 만들어 찍던 것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순간의 생생한 현장에서 포스터 컷을 건져내는 방향으로 바뀌는 추세다. 여기엔 기술의 발전도 한 몫 했다. 예전에는 카메라 셔터소리 때문에 감독의 큐 사인이나 컷 사인에만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사운드 블림프’라고, 할리우드에서 사용되는 카메라 방음 장치를 스틸기사들이 기본적으로 구비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경우 스틸 컷에서 포스터 컷을 얻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변해 가리가 기대한다.

‘우리선희'(위) ‘북촌방향’ 스틸
‘우리선희'(위) ‘북촌방향’ 스틸
‘우리선희'(위) ‘북촌방향’ 스틸

Q. 스틸이 메인 포스터까지 가는 비율이 어떻게 되나.
김진영:
요새 많아졌다. 내 경우에는 운이 좋게도 ‘화이’ ‘이웃사람’ ‘분노의 윤리학’ 홍상수 감독님의 작품 등 많은 스틸 컷이 그대로 포스터로 쓰였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현장 스틸 컷들을 많이 활용하자는 쪽이다. 포스터 디자이너들의 시각도 변했다. 배우들도 현장에서 포스터까지 했으면 좋겠다는 쪽으로 많이 바뀐 것 같고. 아무래도 촬영이 다 끝난 후에 다시 감정을 끌어올려서 포스터를 찍는 것 보다, 현장에서 감정의 여운이 진할 때 담아내는 게 좋으니까. 현장에서 찍으면 나중에 포스터를 위해 하루 날을 뺄 필요도 없고. 물론 현장이 열악하기도 하고, 스틸 컷을 위해 시간을 따로 할애한다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운도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다. 스틸작가의 역량일 수도 있고.

Q. 작년 ‘인간중독’의 경우 스틸컷 한 장이 영화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다. 첫 스틸 컷이 공개되자마자 대중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김진영:
노출수위가 높은 영화여서, 스틸촬영이 필터링 되면 어쩌나 고민했었다. 노출 씬은 배우들이 기피하기도 하고 예민해지는 면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배우의 노출에 대한 마케팅이 필요한 영화에서 반쪽짜리 촬영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중간 중간 배우들에게 스틸 컷을 프리뷰 할 수 있게 보여줌으로서 암묵적인 동의를 얻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노출씬을 포함, 모든 촬영에 함께할 수 있었다. 믿고 맡겨준 송승헌 선배님과 임지연 배우에게 감사드린다.

Q. 현장에서 스틸기사의 천적이 있다면.
김진영:
나 자신이다. “이 정도면 건졌다. 됐다, 쉬자” 혹은 “이 상황에서 이정도면 최선이야” 등의 자기 변명과 합리화를 가장 경계해야하는 것 같다.

Q. 스틸사진을 꿈꾸는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김진영:
영화스틸은 사진의 여러 장르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영화자체에 가장 근접한 매체 일수도 있다. 스틸사진은 커머셜한 면이 크다. 하지만 그 안에서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면 다큐멘터리 작업이나 본인만의 파인아트 작업도 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사진이라는 씬에 있어 스틸사진은 언더그라운드 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적은 ‘페이’와 고된 촬영 스케줄, 도제 시스템과 같은 인력운용, 눈치를 살펴야하는 현장상황 등으로 인해 괴리감을 느끼는 친구들을 여럿 봤다.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스틸사진이라는 것이 달리 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것들을 미리 염두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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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팽현준 기자 pangp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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