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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고독한 겨울에 많이들 오셨군요. 영국의 유명한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음악인들은 모이면 돈 이야기하고 사업가들이 모이면 음악 이야기 한다’고요. 제가 음악 할 때 경제 사정이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우리 곁에 있어줍니다. 우리 음악인들은 하늘과 대화를 합니다.”

26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개최된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부문을 시상하러 온 한대수가 건넨 말이다. 그의 말처럼 요새 음악계 경제사정이 좋지는 않다지만 이날 모인 수상자들의 눈빛에는 희망이 비쳤다. 돈보다는 음악을 바라보는 이들의 음악이 거의 유일하게 조명될 수 있는 수평적인 시상식.

로로스
로로스
로로스



올해 시상식에 절대 강자는 없었다. 로로스, 소유X정기고, 김사월X김해원이 각각 2개 부문을 수상해 공동 최다관왕이 됐다. ‘W.A.N.D.Y’로 한국대중음악상 최고의 영예인 ‘올해의 음반’을 비롯해 ‘최우수 모던록 음반’을 수상한 로로스의 도재명은 수상소감을 말하다 눈물을 훔쳤다. 그는 “호명됐을 때 이렇게 울컥거릴지 몰랐다. 저희 노래 ‘춤을 추자’에 ‘아름다운 밤 우린 춤을 추고 괴로운 밤 우린 꿈을 꾸네’라는 가사가 있다. 2015년 올 한해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는 인사 많이 하는데 사실상 그러기는 불가능하다. 여기 계신 선후배 동료 여러분들 괴로운 밤이 될 때마다 같이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정기고
정기고
정기고



소유와 함께 부른 ‘썸’으로 ‘올해의 노래’와 ‘최우수 팝 노래’를 수상한 정기고는 그야말로 금의환향이었다. 인디 시절에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상을 받았던 그가 최고의 히트곡으로 다시 영예를 안았기 때문. 정기고는 “저에게는 ‘한국대중음악상’이 의미가 깊다. 2012년에 ‘블라인드’로 상을 받고 많은 에너지를 얻어서 음악 계속 할 수 있었는데 더 좋은 상을 받게 돼 너무 감사드린다”라며 “너무 고생하신 스타쉽 식구들 고생했다. 그리고 팬들, 이 자리 같이 하지 못한 소유의 팬, 씨스타 팬들에게도 감사드린다”라고 전했다. 이어 “데뷔 14년 만에 첫 정규앨범을 지금 작업 중이다. 이 정규앨범 준비를 한다고 4년째 말하고 다녔다. 그 앨범으로 내년에 여기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포부를 전했다.

김사월X김해원
김사월X김해원
김사월X김해원



작년에 데뷔앨범 ‘비밀’을 발표한 김사월X김해원은 ‘올해의 신인’과 ‘최우수 포크 음반’을 수상하며 최고의 신인으로 떠올랐다. 김해원은 “신인상 꼭 타고 싶었다. 같이 후보에 오른 다른 분들도 얼마나 앨범에 피와 땀을 쏟았는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정말 열심히 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옥천의 아들인 김해원은 “옥천군의 응원 감사드린다”며 고향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이날 현장에는 김해원의 아버지이기도 한 김영만 옥천군수가 직접 방문해 김사월X김해원을 격려했다.

선우정아에게 상을 받는 이승환
선우정아에게 상을 받는 이승환
선우정아에게 상을 받는 이승환



이승환은 서태지 등을 꺾고 ‘올해의 음악인’을 수상하며 한을 풀었다. 그는 “올 것이 왔다. 조금 더 늦었다면 공로상을 노렸어야 했다”라며 즐거워했다. 이어 “제가 앨범 하나 만들 때 아주 오랜 시간 몇 년에 걸친 시간과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다. 스스로는 완성도 집념이라 하는데 혹자들은 부질없는 집착이라고 한다. 상업적 실패를 경험했을 때는 조롱 감수해야하기도 했다”며 “이 상을 통해 제 음악 노래, 사람에 대해 의심하거나 오해한 분들에게 오늘 증명할 수 있게 됐다. 절 싫어하는 분에게는 ‘메롱’이라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도 제가 만든 노래처럼 살고 싶다. 음악과 삶이 닿아있는 저로 정의롭게 살겠다”라고 말했다.

자이언티(왼쪽), 크러쉬
자이언티(왼쪽), 크러쉬
자이언티(왼쪽), 크러쉬



최근 가요프로그램 1위에도 올랐던 자이언티와 크러쉬가 나란히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하며 2014년 최고의 R&B 아티스트로 꼽혔다. ‘양화대교’로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를 수상한 자이언티는 “너무 기쁘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 그리고 저를 낳아주신 아버지 어머니, 하늘나라로 간 우리 강아지 다 너무 고맙다. 그리고 제 음악에 공감해준 분들도 감사드린다. 기분이 너무 좋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크러쉬는 앨범 ‘크러쉬 온 유(Crush On You)’로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을 수상했고 시상은 작년에 이 상을 받은 자이언티가 직접 했다. 크러쉬는 “’크러쉬 온 유’를 만들 때 알앤비 부문에서 상 받았으면 하는 큰 목표가 있었다. 그런데 영광스럽게도 이 상을 받게 돼서 너무 얼떨떨하다. 이 상을 같이 활동하는 자이언티가 해준 것에 대해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떨린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9와 숫자들, 아시안체어샷 등 밴드들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동물’로 ‘최우수 록 음반’을 수상한 단편선과 선원들의 회기동 단편선은 “오늘 아침 6시까지 강남 재개발로 쫓겨나게 된 가게에서 투쟁을 하고 있었다. 용역과 대처를 하다가 해결이 잘 돼서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며 “함께 있던 친구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 “5년 전 철거 위기에 놓인 두리반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몇 년째 농성에 참여하면서 독립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자립음악생산조합 등을 만들었다. (상을 받고) 틀린 삶도 살았겠지만 모든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감사드린다”라도 덧붙였다. 한편 단편선과 선원들은 갤럭시 익스프레스, 서울전자음악단, 크래쉬, 장기하와 얼굴들, 정차식, 옐로우 몬스터즈의 뒤를 이어 ‘최우수 록 음반’ 수상자가 티아라 왕관을 쓰는 ‘한국대중음악상’의 전통을 이어갔다.

평단에서 호평 받은 9와 숫자들은 ‘숨바꼭질’로 ‘최우수 모던록 노래’를 받으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9와 숫자들의 송재경은 “4년 전 똑같은 자리에서 모던록 부문 상을 받고 또 이렇게 상을 타게 됐다. 한국대중음악상을 탄다고 돈을 받거나 앨범이 많이 팔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는 한국대중음악상 수상 팀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이 따라다닌다. 그만큼 값진 상”이라고 말했다.

권나무
권나무
권나무



올해 신설된 ‘최우수 포크 노래’를 수상한 권나무는 대선배 한대수에게 직접 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권나무는 “삶의 주변부를 돌다가 음악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조금씩 살아온 것 같다. 시상해주신 한대수 선생님처럼 저에게 많은 영감을 준 훌륭한 뮤지션들께 감사드리고 무엇보다 내가 많이 미워하고 사랑했던 분들에게 감사한다. 계속 노래하겠다”라고 말했다.

힙합 부문에서는 화지의 ‘EAT’이 ‘최우수 랩&힙합 음반’을, 비프리의 ‘Hot Summer’가 ‘최우수 랩&힙합 노래’를 각각 수상했다. 재즈 부문에서는 피아니스트 이선지가 ‘더 나이트 오브 더 보더(The Night Of The Border)’로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 재즈음반’을 수상했다. 김창현은 ‘망각’으로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 최우수 연주’를 수상해 눈길을 끌었다. 한승석 정재일은 ‘바리 abandoned’로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음반’을 수상했다. 정재일은 “다음엔 더 잘 하겠다”라고 짧고 굵게 소감을 밝혔다.

공로상을 받은 송창식은 이날 공연 때문에 영상으로 소감을 대신했다. 송창식은 “영광스럽다. 내가 공로가 있기는 있지. 많지는 않아도”라고 운을 띄웠다. 이어 “‘한국대중음악상’이 이제 12회가 됐다고 하는데 내가 12번째로 공로상을 받을 만한가? 나 말고 받아야 할 사람이 열두 사람 더 될 텐데 예쁘게 봐줘서 고맙다. 한국대중음악상이 음악에 더욱 기여를 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얻어서 큰 상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그래야 나도 상 받은 게 더 빛나겠지?”라며 “내가 공연이 있어서 시상식에 못 가게 돼 미안하다. 내년에 공로상을 또 주면 받으러 가겠다”라고 특유의 너털웃음과 함께 소감을 전했다.

잠비나이
잠비나이
잠비나이



잠비나이는 선정위원회특별상을 수상했다. 김창남 선정위원장은 “올해 선정위원 특별상을 받는 잠비나이는 작년 한해 가장 바빴던 팀이 아닐까 한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주목받으며 유럽 곳곳에서 20여회 페스티벌 및 공연을 펼쳤다. 국악에 기반에 두고 록 사운드를 접목해 케이팝과 또 다른 차원으로 한류 물결을 만든 팀”이라고 선정의 변을 밝혔다. 잠비나이의 이일우는 “우리는 해외에서 활동 많이 했지만 한국대중음악상을 보면서 국내에 멋진 아티스트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척박한 환경에서 열심히 음악 하는 이들이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여러 아름다운 음악들이 케이팝으로 불릴 수 있는 환경이 오길 바란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핫펠트
핫펠트
핫펠트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을 수상한 핫펠트(예은)도 수상의 기쁨을 나눴다. 예은은 “제가 핫펠트로 활동하고 처음 받는 상이고, 데뷔하고 나서 혼자서 상 받는 게 처음이다. 뜻 깊은 의미 있는 상”이라며 “저와 함께 고생한 우민 오빠, JYP 회사 식구들, 팬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더 열심히 해서 내년에 또 이곳에 오도록 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신해철, 정성조, 채수영을 나란히 추모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김현준 선정위원은 “우리는 하나의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 노래가 내 삶을 바꿨으니 세상도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름다운 노래를 남기고 간 이들에게 애정과 찬사 고마움을 잃지 않을 것”이라며 “이제 더 이상 세 사람을 무대 위에서 볼 수 없다. 그래도 믿는 것이 있다. 그들이 남긴 음악이 계속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이 세상까지 바꿀 수 있으리라 하는 믿음”이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색소포니스트 김오키는 프리한 재즈 연주를 통해 고인들의 넋을 기렸다. 이외에도 옐로우 몬스터즈, 선우정아, 윤영배, 로큰롤라디오가 공연을 통해 동료들의 수상을 축하했다.

한편 이날 시상식에는 ‘미생’의 정과장 역을 열연한 배우 정희태가 시상자로 나와 눈길을 끌었다. 정희태는 “‘미생’을 하면서 직장인의 치열한 삶을 경험했는데 오늘 참석한 여러분에게는 ‘한국대중음악상’이 치열한 자리가 아닌가 한다”며 “‘미생’에 ‘버티는 게 강한 것’이라는 대사가 있다. 이 상이 뮤지션들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 수상 명단

▲ 올해의 음반 = 로로스 ‘W.A.N.D.Y’
▲ 올해의 음악인 = 이승환
▲ 올해의 노래 = 소유X정기고 ‘썸’
▲ 올해의 신인 = 김사월X김해원
▲ 최우수 록 음반 = 단편선과 선원들 ‘동물’
▲ 최우수 록 노래 = 아시안체어샷 ‘해야’
▲ 최우수 모던록 음반 = 로로스 ‘W.A.N.D.Y’
▲ 최우수 모던록 노래 = 9와 숫자들 ‘숨바꼭질’
▲ 최우수 포크 음반 = 김사월X김해원 ‘비밀’
▲ 최우수 포크 노래 = 권나무 ‘어릴 때’
▲ 최우수 팝 음반 = 악동뮤지션 ‘PLAY’
▲ 최우수 팝 노래 = 소유X정기고 ‘썸’
▲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 = HEO ‘Structure’
▲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 윤상 ‘날 위로하려거든’
▲ 최우수 랩&힙합 음반 = 화지 ‘EAT’
▲ 최우수 랩&힙합 노래 = 비프리 ‘Hot Summer’
▲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 = 크러쉬 ‘Crush On You’
▲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 = 자이언티 ‘양화대교’
▲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재즈 음반 = 이선지 ‘The Night Of The Border’
▲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크로스오버 음반 = 한승석 정재일 ‘바리 abandoned’
▲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최우수 연주 = 김창현 ‘망각’
▲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 남자 아티스트 = 박재범
▲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 여자 아티스트 = 핫펠트
▲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 그룹 = 인피니트
▲ 선정위원회 특별상 = 잠비나이
▲ 공로상 = 송창식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최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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