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이하 SXSW)’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신기하지 않은 곳이었다.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약 일주일 간 ‘SXSW’가 열리는 텍사스 오스틴을 취재하면서 거장들부터 거리의 이름 모를 악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음악의 천국이었다. 취재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손길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볼 때였다. 텍사스 블루스의 전설 조니 윈터는 웨스턴바에서 공연을 했고, 엑스재팬의 리더 요시키는 작은 교회에서 수십 명의 관객을 앞에 놓고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 외에도 블론디, 로비 크리거(도어즈) 등 록의 역사를 일군 거장들의 무대를 목격할 수 있었다.

조니 윈터
조니 윈터
조니 윈터

# 12일 12:30am Rowdys Saloon
‘SXSW’ 출연진을 체크하면서 조니 윈터는 반드시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텍사스에 왔는데 당연히 ‘텍사스 블루스’의 전설을 봐야하지 않겠나? 조니 윈터의 공연을 본 것은 12일 자정 ‘라우디스(Rowdys)’라는 미국의 전형적인 웨스턴 바였다. 바에 들어가자 영화에서나 보던 로데오 기계가 관객을 맞이했다. 바 중앙에 마련된 무대에는 조니 윈터를 보기 위한 약 100여명의 중년 관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밴드가 사운드 체크를 마치자 일흔 살의 노구 조니 윈터가 무대로 올라왔다. 첫 곡은 척 베리를 커버한 ‘자니 비굿(Johnny B. Goode)’이었다. 조니 윈터는 앉아서 공연을 했기 때문에 그를 보기 위해서는 관객을 비집고 앞으로 가야 했다.

조니 윈터는 비교적 젊은 밴드의 사운드에 의지해 힘겹게 노래를 이어갔다. 그는 노쇠한 기색이 역력했다. 공연 초반 몸이 덜 풀렸는지 뚜렷하지 않은 목소리에 미스톤을 내기도 했고, 밴드와 박자가 엇나가기도 했다. 조니 윈터를 실제로 보게 됐다는 기대감이 우려로 변할 즈음 마법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목소리는 점점 선명해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기적거리며 뒤뚱대던 일렉트릭 기타는 갑자기 강한 드라이브와 함께 급물살을 타더니 굉음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기타와 슬라이드 바는 고희를 넘긴 노구의 손에 이끌려 사납게 포효하더니 이내 양처럼 잠잠해졌다. 공연을 마친 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조니 윈터를 봤을 때 왈칵 눈물을 쏟을 뻔 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블루스로 산전수전을 겪은 조니 윈터는 2014년에 스마트폰으로 자신을 찍어대는 관객들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무대 위 대형 지미 헨드릭스 우표
무대 위 대형 지미 헨드릭스 우표
무대 위 대형 지미 헨드릭스 우표

# 13일 8:15pm Butler Park Stage Lady Bird Lke
로스 론니 보이스를 보기 위해 오스틴 외곽에 있는 버틀러 파크로 향했다. 시내에서 도보로 약 30분 거리여서 택시처럼 운행하는 2인용 자전거를 타고 갔다. 버틀러 파크는 잔디밭 위에 무대가 마련되고 수천 명의 관객이 운집해 흡사 록페스티벌을 보는 것 같았다. 로스 론니 보이스의 무대는 미처 보지 못했지만 뒤를 이어 지미 헨드릭스의 추모 무대가 마련됐다. ‘SXSW’에서는 매년 전설적인 뮤지션들에 대한 추모 무대를 마련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자체적으로 지미 헨드릭스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지미 헨드릭스의 유가족이 나와 헌사를 한 뒤 루신다 윌리엄스의 ‘엔젤(Angel)’을 시작으로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이 나와 지미 헨드릭스의 곡을 노래했다.

하이라이트는 로비 크리거(도어즈)와 슬래쉬의 협연이었다. 먼저 무대에 나온 로비 크리거는 지미 헨드릭스, 그리고 역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짐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에 대한 멘트를 날린 뒤 ‘헤이 죠(Hey Joe)’를 연주했다. 올해로 68세가 된 로비 크리거가 27살에 요절한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를 재현하는 순간이었다. 이어 슬래쉬가 무대에 나오자 관객들은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역시 대단한 인기였다. 20살 차이인 두 선후배가 함께 연주한 곡은 지미 헨드릭스의 슬로우 블루스 넘버인 ‘레드 하우스(Red House)’였다. 둘의 주고받는 연주에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에 대한 경외감이 느껴졌다. 이 세 명에 대한 각각의 추억이 하나로 중첩되자 감동의 세 배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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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12:00am Brazos Hall
13일은 한국 아티스트들이 총출동하는 서울소닉 스테이지가 열리는 날이었다. 로큰롤라디오, 러브엑스테레오의 공연을 보다가 다른 클럽에서 공연 중인 블론디를 보기 위해 냅다 달렸다. 블론디가 공연한 브라저스 홀은 ‘SXSW’에 마련된 공연장소 중에서도 규모가 큰 축에 속했다. 역시 블론디의 인기 덕분인지 공연장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가까스로 공연장에 들어서자 마침 블론디의 히트곡 ‘아토믹(Atomic)’이 흐르고 있었다. 블론디의 보컬 데보라 해리는 가만히 서서 관객을 지긋이 바라보며 노래했다. 이제는 할머니 연배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섹시했다. 눈에서 마치 광선이 나가는 것 같았다. 데보라 해리의 섹시함은 이틀 전 케이팝 나잇 아웃에서 본 현아의 섹시함과는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공연 막판이어서 그런지 히트곡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하트 오브 글래스(Heart of Glass)’의 통통 튀는 농염함은 실제로 보니 위력이 대단했다. ‘콜 미(Call Me)’가 흐르고 관객들의 열기가 정점에 달하자 데보라 해리는 육감적인 춤사위를 선보이더니 관객들에게 손키스를 날렸다. 70년대 뉴욕의 전설적인 라이브클럽 CBGB에서 공연하던 블론디의 무대가 이랬을까? 지금이 이 정도인데 그 시절 데보라 해리의 섹시함은 과연 어땠을까? 궁금증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였다.(나중에 데보라 해리의 나이가 68세인 것을 알고 까무러칠 뻔 했다) 해리는 “올해가 데뷔 4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라고 말하며 신곡도 들려줬다.

요시키
요시키
요시키

# 14일 10:30pm St David’s Bethell Hall
요시키의 공연은 교회에서 열렸다. 교회 안에서도 부속 예배실에서 소규모로 열렸다. 관객은 약 5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처럼 슈퍼스타의 공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은 ‘SXSW’이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요시키의 공연을 기다리는데 한 백인 남성이 다가와 엑스재팬의 광팬이라며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공연장에는 일본인들과 백인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요시키는 현악 4중주와 함께 피아노로 협연을 했다. 말을 배우기 전부터 피아노를 배웠다는 요시키는 엑스재팬 시절의 곡들을 클래식 풍으로 편곡해 연주해줬다. 요시키는 전날 ‘SXSW’ 행사장 인근 거리에서 승용차 한 대가 시민들을 들이받아 2명이 숨지고 23명이 다친 사건을 추모하며 즉흥 연주곡을 들려주기도 했다. 요시키 특유의 과장된 몸동작과 함께 한 피아노 연주는 다이내믹했으며 때로는 절절했다. 이런 요시키의 음악에 홀려서일까? 결국은 자정에 열린 요시키의 프라이빗 파티까지 따라갔다. 파티에서 요시키는 홀로그램에 비친 자신과 함께 듀오로 피아노를 연주했다. 정말 대단한 ‘자뻑’이 아닐 수 없었다. 뭐 어떠랴? 이곳은 ‘SXSW’인데. 무슨 일이 벌어져도 신기하지 않은 곳.

텍사스 오스틴=글, 사진.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블론디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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