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요계에 표절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심심찮게 들려오는 말이 있다. ‘장르적 유사성’이 바로 그 주인공. 이를 두고 방송인 김구라는 종합편성채널 JTBC ‘썰전-독한 혀들의 전쟁’에서 프라이머리의 ‘아이 갓 씨(I Got C)’ 표절 논란을 놓고 “장르 유사성은 표절 논란의 만능 방패 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애매한 표절 기준에 이슈만 양산하는 현 상황을 아프게 꼬집은 말이 아닐 수 없다.

헌데 표절 여부를 따지기 어려운 일이 더러 발생하는 건 가요계뿐만이 아니다. 지상파 3사와 케이블채널에서도 이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기는 마찬가지. 특히 일부 유사 장르의 프로그램들은 같은 포맷도 모자라 동 시간대에 전파를 타면서 ‘총성 없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 방송 포맷에는 ‘원조집’이 없다?

가장 대표적인 장르가 육아 예능이다. 먼저 육아 예능 열풍에 불을 지핀 것은 MBC ‘일밤-아빠! 어디가?’(이하 ‘아빠 어디가’)다. 지난해 1월 첫 전파를 탄 ‘아빠 어디가’는 ‘부성(父性)’이라는 신선한 소재와 아이들이 만드는 예측 불허한 웃음 코드를 결합해 MBC ‘일밤’의 부흥을 이끌었다. 육아 예능이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자 후속 주자들도 뒤늦게 전장에 뛰어들었다. KBS2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SBS ‘오! 마이 베이비’(이하 ‘오마베’)가 그 대표.

MBC ‘일밤-아빠! 어디가?’, KBS2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오! 마이 베이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MBC ‘일밤-아빠! 어디가?’, KBS2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오! 마이 베이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MBC ‘일밤-아빠! 어디가?’, KBS2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오! 마이 베이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세 프로그램은 저마다 의도하는 바가 다르고 방송 구성에서도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큰 맥락에서는 육아 예능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아빠 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동 시간대 전파를 타며 각각 10%(닐슨 코리아 전국 시청률 기준)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에 MBC 한 관계자는 “육아 예능이 인기를 얻음에 따라 유사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건 그렇다고 쳐도, 동 시간대에 맞불을 놓으니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볼멘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의 반응 또한 천양지차다. 어디로 채널을 돌려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방송되자 시청자들은 방송보다는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이의 선호에 따라 방송을 시청하는 기형상도 빚어지고 있다. 이미 육아 예능이라는 소재 자체가 주는 신선함을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 지상파 3사와 케이블채널의 물고 물리는 ‘베끼기 전쟁’

이런 현상은 지상파 3사와 케이블채널 간에 더 두드러진다. 앞서 지난해 7월 첫 방송 된 이후 신드롬 급 인기를 얻었던 tvN ‘꽃보다 할배’가 대표적 사례다. KBS2 ‘1박 2일’의 연출을 맡았던 나영석 PD가 CJ E&M으로 이적한 뒤 이우정 작가와 합심해 만든 ‘꽃보다 할배’는 ‘황혼의 배낭여행’ 콘셉트로 지상파 못지않은 시청률을 기록, 다시보기 매출 또한 2억 원을 돌파하는 등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KBS에서는 이런 열풍을 놓칠세라 유사한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김수미, 김용림, 김영옥, 이효춘 등 중·장년 여배우가 출연하는 KBS2 ‘엄마가 있는 풍경-마마도’(이하 ‘마마도’)는 기획 단계부터 “‘꽃보다 할배’의 여배우판”이라는 쓴소리를 들으며 결국 첫발을 내디뎠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마마도’는 현재 전국시청률 3.9%를 기록하며 고전 중이다. 단순히 포맷만 가져와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단적인 증거가 아닐 수 없다.

tvN ‘꽃보다 할배’(왼쪽), KBS2 ‘엄마가 있는 풍경-마마도’ 포스터
tvN ‘꽃보다 할배’(왼쪽), KBS2 ‘엄마가 있는 풍경-마마도’ 포스터
tvN ‘꽃보다 할배’(왼쪽), KBS2 ‘엄마가 있는 풍경-마마도’ 포스터

물론 이런 식의 물고 물리는 ‘포맷 베끼기’는 그 역사가 짧지 않다. 지난 2009년 첫 전파를 탄 뒤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슈퍼스타K’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다. 이후 SBS는 ‘일요일이 좋다-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이하 ‘K팝스타’), MBC는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이하 ‘위탄’) 등 다수 프로그램이 쏟아졌지만, 충분한 콘셉트와 기획 없이 오디션 열풍이 한창일 때 그 인기에 편승한 프로그램이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K팝스타’는 ‘기획사 캐스팅’을 결합한 시도로 시즌3를 맞으며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 축으로 입지를 다졌으나 이런 기회는 모두에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 ‘표절’과 ‘장르적 유사성’ 차이점은?

‘표절’이 “다른 사람이 창작한 저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도용하여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발표하는 행위”를 지칭한다면, ‘장르적 유사성’이란 “비슷한 장르의 저작물 간에 일정 부분 유사한 포인트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본래 ‘장르(genre)’가 프랑스어로 문학의 종류를 일컫는 말이며, 분류 기준이 작품 간의 ‘유사성’에 있다는 점에서 ‘장르적 유사성’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쉽사리 판단을 내리기를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유행처럼 번지는 어떤 포맷의 프로그램이 들불처럼 번질 때 시청자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관찰, 육아, 여행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가를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압도적인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단시간 내에 빠르게 소모되는 포맷은 그만큼 생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SBS에서 얼마 전 숱한 화젯거리를 양산했던 tvN ‘더 지니어스: 룰 브레이커’와 비슷한 포맷의 추리 예능이 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한 대중의 반응은 냉랭했다. 뚜껑도 열어보기 전에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것도 문제지만, 좋든 싫든 새 프로그램이 방송도 되기 전부터 앞선 프로그램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건 모두에게 좋지 않은 상황임이 틀림없다. 지상파 채널과 케이블채널은 분명 제작 환경부터, 기획 역량, 타깃 시청자층까지 다방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에 따라 프로그램의 목적성과 의미 또한 달라져야 함은 명백한 사실.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방송가판 ‘장르적 유사성’이란 소리에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드는 까닭이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KBS, MBC, S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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