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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반가운 잡지가 화면에 잡혔다. 영화잡지 ‘키노’가 그것. 성나정(고아라)의 영화동아리 선배가 배우 강수연이 표지모델을 한 ‘키노’를 펼치자 후배가 “이런 책은 정기 구독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명색이 영화동아리인데”라고 말한다. 그러자 선배는 의기양양하게 “안 그래도 정기구독하려고. 그리고 ‘씨네21’이라고 주간지도 생겼어. 그것도 정기구독하고”라고 대답한다. ‘키노’와 ‘씨네 21’은 영화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담아 당시 영화 마니아들에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킨 잡지들. 대중의 영화를 보는 시각을 보다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키노’를 보고 자란 세대가 한국 영화계를 발전시켰다는 말이 나올 정도.

90년대에는 영화잡지 못지않게 음악전문잡지도 많았다. ‘핫뮤직’, ‘GMV’, ‘월드팝스’, ‘락킷’, ‘서브’, ‘뮤직라이프’, ‘포토뮤직’ 등이 그것. 당시 음악 애호가들은 각자 취향에 맞는 음악잡지를 골라서 정보를 얻고, 그 음악을 찾아들었다. 달리 음악 정보를 얻을 곳이 없었던 당시에 이 잡지들은 일종의 바이블과도 같았다. 대표적인 음악잡지로 꼽히는 ‘핫뮤직’은 1990년 11월 레드 제플린의 보컬리스트 로버트 플랜트가 표지모델을 한 창간호로 출발했다. 90년대 초반 당시에는 조성진 편집장의 ‘뮤직랜드’, 하세민 편집장의 ‘뮤직피플’과 같은 음악잡지들도 있었다. 이들 편집장들은 당시 대표적인 음악 칼럼니스트들이기도 했다.

핫뮤직 창간호와 제2호
핫뮤직 창간호와 제2호

‘핫뮤직’은 서라벌레코드의 투자를 받아 생겨났다. ‘핫뮤직’ 초대편집장을 맡았던 성우진 씨는 “올드 록부터 하드록, 헤비메탈에 이르기까지 록을 중심으로 내용이 꾸려졌다”며 “많이 팔릴 때에는 2만부 이상이 판매돼 음반업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때도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핫뮤직’은 음악을 심도 있게 듣는 마니아들의 지침서이기도 했다. 부록으로는 책 사이에 낄 수 있는 LP판을 주기도 했다. 90년대 초는 세계적으로 헤비메탈이 인기가 있던 시기. 그에 맞춰 ‘핫뮤직’은 건즈 앤 로지스, 스키드 로우, 도켄, 화이트 라이언, 워런트 등 당시 인기 있던 글램메탈부터 블랙메탈에 이르기까지 록 전반을 다뤘다. ‘헤비메탈의 현주소’와 같은 특집기사를 싣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많이 팔린 호는 ‘뉴 키즈 온 더 블록’을 표지로 했던 호였다. 팬덤의 위력이었다.

성우진 씨는 “당시는 방송에서 팝을 들어주는 비중이 높아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라며 “전영혁, 성시완, 배철수 등 스타 DJ들이 진행하는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의 인기와 함께 다양한 음악잡지도 각광을 받던 시기”라고 말했다.

GMV 창간호
GMV 창간호

‘핫뮤직’이 록을 근간으로 했다면 ‘GMV’는 팝 전반을 다뤘다. ‘GMV’는 1993년 10월에 마이클 잭슨이 표지모델을 한 창간호로 시작했다. 당시 KBS에서 뮤직비디오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지구촌 영상 음악’의 관련 잡지로 시작한 ‘GMV’. 이에 걸맞게 창간호 부록으로 테이크 댓 등 당시 팝스타들의 뮤직비디오가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줬다. ‘GMV’ 편집장을 지냈던 한경석 현 ‘비굿’ 편집장은 “당시는 음악잡지가 음악 정보를 얻는 최고의 경로였다. 잡지를 본 후 사고 싶은 음반 이름을 노트에 적고, 구입 후에 그 이름을 지우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핫뮤직’이 록 마니아들부터 음악을 심층적으로 듣는 소위 ‘덕후’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GMV’는 일반 팬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려 했다. 한경석 씨는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루는 것을 기조로 했다”며 “굳이 필진들의 취향을 드러내려 하기 보다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부터 프로그레시브 록, 블랙 메탈까지 다양하게 소개하려 했다”라고 말했다.

서브 창간호
서브 창간호

‘핫뮤직’과 ‘GMV’가 팝을 주로 다뤘다면 ‘서브’는 한국 대중음악을 작품 위주로 다루기 시작했다. ‘서브’는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표지를 한 1998년 1월호로 창간했다. ‘서브’를 발행한 박준흠 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는 “‘서브’는 미국의 ‘CMJ(College Music Journal)’를 모델로 출발했다”며 “90년대 해외 록의 메인스트림을 차지했던 얼터너티브 록을 전면 수용하고, 더불어 한국 대중음악을 비평적으로 다루려 했다”라고 말했다.

‘서브’는 신중현, 한대수, 이정선, 김창완(산울림), 들국화부터 당시 태동기였던 인디음악에 이르기까지 다르며 음악적인 면을 부각했다. 독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박준흠 씨는 “IMF가 터질 무렵에 책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좋아 1998년 4월호부터는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라며 “음악잡지가 팔렸다는 것은 순수한 음악 텍스트를 소비하는 층이 있었다는 것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90년대까지만 해도 음악을 그 자체로 향유하는 경향이 강했다”라고 말했다.

이들 음악잡지들은 당시 문화계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가령 ‘핫뮤직’은 당시 기자, 필진 등을 통해 음악 평론가들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핫뮤직’ 수석기자를 지낸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은 “‘핫뮤직’은 평론계의 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핫뮤직’에서 독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대회 ‘팝 퍼즐 릴레이’를 통해서는 이종현 마스터플랜 대표, ‘핫뮤직’ 기자부터 ‘서브’ 편집장까지 지낸 음악평론가 성문영 씨, 이봉수 비트볼뮤직 대표 등이 입상하기도 했다.

90년대가 음악잡지 전성기였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들의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당시 다양한 팝송을 향유하던 분위기는 한국대중음악을 다양하게 발전하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성우진 씨는 “음반매장인 상아레코드, 부루의 뜨락 등을 드나들며 원판을 구하러 다니던 신해철, 윤상, 김현철과 같은 팝송키드들이 팝의 어법을 가요에 적용해 한국 대중음악을 성장시켰다”라고 말했다. 박준흠 씨는 “팝을 듣던 이들은 음악적 취향이 계발된 이들로 단지 팝을 듣는데서 그치지 않고 어떤날, 들국화와 같은 작품성 있는 가요들을 찾아 들었다”라고 말했다.

‘핫뮤직’은 2008년, ‘GMV’는 2005년, ‘서브’는 2000년에 각각 운영난으로 아쉽게 문을 닫았다. ‘재즈피플’, ‘엠엠재즈’와 같은 재즈잡지를 제외한 대중음악 잡지들은 향수의 저편으로 사라졌고, 음악과 관련된 글들은 인터넷 웹진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최근에는 무크지 ‘대중음악사운드’, 무가지 형태로 나오는 월간 ‘비굿’, ‘파라노이드’와 같은 대중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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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V’ 편집장 출신으로 현재 ‘비굿’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한경석 씨는 “다양한 음악을 다루는 매체가 있어야 한다. 인터넷에 정보는 많지만 콘텐츠가 편향된 측면이 있다”라며“ 가령 아이돌을 다루는 잡지, 인디음악을 다루는 잡지, 팝을 다루는 잡지로 세분화해서 전문적으로 다뤄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대중음악사운드’를 발행하고 있는 박준흠 씨는 “‘대중음악사운드’의 경우 90년대 음악잡지와 달리 음악 소비자 저변확대를 위한 방법론을 고민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라며 “다양한 방향성을 지닌 음악잡지가 나오는 것이 음악계를 풍요롭게 하는데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명하 편집장은 ‘핫뮤직’을 계승해 ‘파라노이드’를 창간했다. 송 편집장은 “종이잡지의 경우 같은 취향을 가진 층을 하나로 묶는 결속력을 지니고 있다. ‘핫뮤직’때부터 그랬듯이 지금도 록, 메탈을 좋아하는 뮤지션들과 팬들이 ‘파라노이드’를 통해 하나로 대동단결하는 것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글, 사진.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사가와 후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