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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제 또래 뮤지션 만나면 정규앨범을 낼 것이냐, 디지털 싱글을 낼 것이냐, 여러 파트로 나눠서 낼 것이냐 하는 고민을 많이 해요. 고민 끝에 정규앨범으로 결정했는데, 이렇게 긴 호흡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형식의 앨범을 언제까지 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음악을 들어와서 그 형식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3년 터울로 앨범을 냈는데 2016년에는 세상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잖아요. 지난 앨범도 그랬지만, 이번엔 정말 마지막 정규앨범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혹시라도 마지막이라면 진짜 폼 나게 장식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고, 전 만족합니다.”(11월 13일 정규 5집 ‘고독의 의미’ 음악 감상회 中)

앨범 ‘고독의 의미’는 이적이 나이 마흔 살에 내놓는 앨범이다. 패닉 1집이 나왔던 1995년 당시 20대 초반이던 이적은 자신이 마흔 살 까지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이나 했을까? 패닉은 90년대 가요계에서 상당히 센세이셔널한 존재였다. ‘달팽이’, ‘왼손잡이’를 팬들의 힘으로 연이어 히트시키더니(당시 1집은 60만 장 가량이 팔려나감), 2집 ‘밑’에서는 실험적이면서 다소 발칙한 음악을 선보였다. 가사는 방송금지, 손쉬운 멜로디도 없었다. 하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실험성이 단지 시도로 머물지 않고 작품으로 연결된 90년대 최고의 2집이고 할까? 이후 이적은 주류 시장에 머무르면서도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앨범에서 늘 타협 없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한 자세는 새 앨범 ‘고독의 의미’에서도 마찬가지. 늘 그래왔듯이 앨범의 완결성에 공을 들인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최근 EP 형태의 앨범, 싱글시장이 커지면서 음악이 빠른 속도로 소비되고 있는데, 그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내부의 음악을 촘촘히 쌓아서 들고 나온 것이다. 만약에 이적마저 최근 시장 상황에 타협했다면 섭섭할 뻔 했다. ‘결과론적으로 말해서’ 이적의 선택이 옳았다.

이적은 새 앨범 타이틀곡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에 대해 “이런 곡이 타이틀곡이 되는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음원차트에 이런 곡이 들어가 있는 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곡은 멜론을 비롯해 8개 온라인 음원사이트의 음원차트에서 보란 듯이 1위에 올랐다. 다비치, 미쓰에이, 빅뱅의 탑 등 음원강자들이 이적의 밑에 있는 것. 이적의 말처럼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른 것은 다소 의외다. 이 곡은 이적의 통산 타이틀곡 중 가장 어두운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적은 ‘무한도전 가요제’를 통해 난생 처음 흥행코드를 염두에 두고 곡을 만들어봤다. 유재석과 함께 한 ‘압구정 날라리’가 그것. 이 곡에 대해 이적은 “온 국민이 보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처음으로 대중적인 ‘촉’을 생각했다. 그냥 폼만 나서는 안 되고, 폼 안 나도 안 되고, 재밌어야 하는데 너무 싼 티가 나도 안 되고. 설득력 있는 곡을 만든다는 것이 내겐 긍정적인 경험”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적 새 앨범에는 ‘압구정 날라리’처럼 대중의 눈치를 본 모습은 일절 보이지 않는다. 이적은 ‘킬링 트랙’을 만들기보다는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집중해서 듣게 하는 응집력 있는 앨범을 만들어냈다. 자신이 ‘앨범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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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은 새 앨범을 작업하면서 상투적 느낌이 나는 곡은 과감히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새 앨범에 실린 곡들은 기존의 공식들을 살짝 비껴난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요 근래 찾아보기 힘든 뜨거운 발라드. 감정이 격하게 터져 나와 청자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노래다. 한 번 들어서는 쉽게 멜로디가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곱씹어 들을수록 곡의 진가가 우러나온다. 타이거JK가 랩으로 참여한 ‘사랑이 뭐길래’ 역시 최근 가요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랩 피쳐링의 공식에서 비껴난다. 최근 나온 다른 곡들이 곡의 간주 부분에서 랩이 흐르는 정도라면 이 곡은 댄서블한 록의 리듬 위로 이적의 노래와 타이저JK의 랩이 자연스럽게 앙상블을 이룬다. 이는 김진표와 오랫동안 호흡해온 내공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십 년이 지난 뒤’는 비틀즈를 오마주한 곡이다. 듣자마자 비틀즈의 ‘화이트앨범’에 실린 ‘줄리아(Julia)’의 도입부가 떠오르는 곡. 그만큼 비틀즈의 멜로디를 과감하게 사용했지만 오마주 답게 완전히 다른 곡을 탄생시켰다. 이 곡은 멜로디뿐만 아니라 곡의 믹싱, 악기의 배치에 있어서도 비틀즈 풍의 분위기가 엿보인다. 이처럼 이적의 매력 중 하나는 음악 곳곳에서 팝의 고전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정인과 듀엣 곡인 ‘비포 선라이즈’ 역시 90년대 풍의 이지리스닝 계열의 팝을 연상케 한다. 이 곡은 두 남녀가 과거의 사랑을 그리는 묘한 무드를 가진 곡으로 사랑의 쓰고 단 맛을 다 본 성인들이 공감할만한 가사라는 것이 최근 여타 듀엣 곡과 다른 점이다.

앨범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은 심각한 곡들이 기다린다. ‘뭐가 보여’, ‘병’과 같은 곡들이 그렇다. 특히 정재일이 피아노로 참여한 ‘병’은 실험적인 앨범으로 평가받는 패닉 2집 시절의 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 활동 초기에 과감한 음악을 선보였던 이적을 좋아하는 팬들이 반가워할만한 노래다. 이적이 정규앨범을 고집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곡들 때문이다. 이적은 “‘병’, ‘뭐가 보여’와 같은 곡들은 디지털 싱글로 낼 수 없는 곡들”이라며 “이 곡들을 싱글로 내면 마치 바다에 물방울을 던지는 느낌일 것 같다. 하지만 이 곡들이 앨범에 실리면 들려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앨범 제목과 동명의 곡인 ‘고독의 의미’는 일렉트릭 기타의 아르페지오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곡이다. 기타 연주부터 고독함이 느껴지는데, 그 뒤로 섬세한 전자음들이 포개져 섬세한 그림을 그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앨범에서 가장 수려한 멜로디를 선사한다. 앨범을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집중해서 들어준 팬들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말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뮤직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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