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이효리+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이 작업이 내겐 즐겁다. 트렌드를 따르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왔던 작업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부담감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모험을 계속 하고 싶다.”(2010년 5월 월간지 ‘핫트랙스’ 인터뷰 中)

약 3년 전 4집 〈H-Logic〉 발표 후 가진 인터뷰를 보면 이효리는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새로 만드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5집 〈MONOCHROME〉은 어떤가? ‘미스코리아’를 들어봐라. 그녀가 여전히 트렌디 스타인가? 새 앨범에 ‘U-Go-Girl’이나 ‘Chitty Chitty Bang Bang’, 그리고 ‘10minutes’처럼 유행을 선도할 법한 곡은 없다. 예전처럼 파격적이거나 섹시함을 내세운 곡은 보이지 않는단 말이다. 지난 10년간 ‘천하무적 이효리’가 등장하면 걸그룹 후배들은 닥치고 그 뒤를 쫓았다. ‘10minutes’의 섹스코드가 얼마나 지루하게 반복됐는가? 그 근원지인 이효리는 오히려 “자고나면 사라지는 그깟 봄 신기루에 매달려 더 이상 울고 싶진 않아”(미스코리아)라고 노래하며 어딘가 다른 지점을 향해 간다. 16곡이 담긴 꽉 찬 풀랭스 앨범에서 무려 9곡을 작사하며(1곡 작곡) 음악적인 욕심을 과시한 이효리. 그녀의 변신은 슬슬 하나의 본보기로 평가받고 있으며, 자전적인 노래 ‘미스코리아’는 음원차트 정상에 올라 여왕의 귀환을 알렸다. ‘결과론적으로 말해서’ 이효리의 변신은 두 마리토끼(상업적 성공과 음악적 성취)를 모두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만약 이효리가 예전처럼 파격적이고 트렌디한 음악을 고집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MONOCHROME〉의 키워드는 변신이다. 첫 싱글 ‘미스코리아’부터 이제껏 이효리가 불러온 노래들과는 너무 다르다. ‘미스코리아’ 뮤직비디오 속의 이효리는 헐벗고 있지만, 야하지 않다. 이효리가 작사, 작곡하고 연인인 기타리스트 이상순이 편곡한 노래의 멜로디는 롤러코스터(이상순이 몸담았던 밴드)의 음악을 떠올리게 하고, 가사에서는 자신에게 이입된 과도한 이미지들을 훌훌 털어버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것이 바로 싱어송라이터 이효리의 면모일까? 앨범에는 기존에 이효리가 시도하지 않은 다양한 장르와 함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러한 ‘성장’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다른 음악세상과의 만남이다.

〈MONOCHROME〉에 인디뮤지션 김태춘이 참가했다는 소식을 미리 접했을 때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김태춘은 인디 신에서도 드물게 정통 컨트리, 블루스를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욕설도 서슴지 않는 강골이다. 그런 김태춘에게 이효리가 러브콜을 하다니 ‘놀랄 노 자’였다. 한편으로는 김태춘과 합작을 한다면, 앞으로 이효리가 어떤 음악을 해도, 누구와 만나도 신기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녀의 변신을 가능케 한 것은 김태춘, 빈지노, 고고보이스 등 이효리와 활동반경이 다른 인디뮤지션들과의 협연이다. 아이돌가수와 인디뮤지션의 협연은 몇 년 전부터 꽤 있어왔다. 하지만 이효리의 작업은 형식적인 콜라보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기 위한 밀접한 조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례로 김태춘이 만들고 기타연주까지 직접 해준 ‘사랑의 부도수표’, ‘묻지 않을게요’를 녹음할 때 이효리는 김태춘을 스튜디오로 직접 불러 보컬에 대한 코치까지 받았다. 이효리는 김태춘을 ‘다른 세상 뮤지션’이 아닌 ‘다른 음악을 하는 후배 뮤지션’으로 친근하게 대하며 함께 작업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이효리는 외피만 바꾼 것이 아닌,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음악적 변신을 보여줬다.

이러한 이효리의 음악적 변신에는 연인인 이상순의 역할도 컸다. 이상순을 사귀고 이효리는 제주도에 가서 장필순을 만나고, 윤영배의 공연이 열린 소극장을 찾기도 했다. 이상순은 평소 자신이 존경한 장필순, 윤영배 등 ‘하나음악’ 출신 음악가들을 연인인 이효리에게 소개해주며 음악적 영감을 쌓는데 도움을 준 것이다. 상업음악의 중심에 있는 걸그룹의 상징과 같은 이효리가 상업성과 타협하지 않고 작품성을 추구해온 하나음악 뮤지션들과 만남을 넓혀간 것. 이로써 앞으로 이효리가 시도할 수 있는 음악적 외연이 자연스레 넓어졌다. 이게 사랑의 힘이라면 그 얼마나 긍정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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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CHROME〉 속 여러 가지 시도는 이효리에게 상당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가요계에서 존재감이 확실한 슈퍼스타가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난 작업을 시도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효리 정도의 뮤지션이 효리다운 음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기존의 노선만 밟아도 어렵지 않게 ‘여왕’의 호칭을 이어갔을 것이기 때문. 하지만 이효리는 그러지 않고, 자신의 음악적 틀을 넓혀갔다. 최종적으로 새 앨범은 트렌디한 댄스뮤직이 아닌 1960년대 소울, 컨트리, 로큰롤, 모던포크 등 정통의 사운드에 힘이 실려 있다. 이는 웬만한 음악적 내공 없이 시도했다가는 어설퍼질 수 있는 장르들이며, 최악의 경우 흉내에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효리는 자신의 방식으로 꽤 그럴 듯하게 소화해냈다.

〈MONOCHROME〉은 가요계에서 자신의 지분이 확실한 아이돌 1세대 출신 슈퍼스타가 다양한 음악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처음 목격하는 풍경이 아닌가? 이효리는 최근 ‘소셜테이너’로서 활동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이쯤 되면 슬슬 세상에 던지고 싶은 이야기들이 속에 쌓일 때가 됐다. 이것이 바로 싱어송라이터로서 준비 기간이 아니겠는가? 더 이상 소주병에 효리는 없지만, 이제 우리는 ‘뮤지션 효리’를 얻었다. 효리의 변신에 일단 우리의 머리는 놀랐다. 앞으로 가슴을 울릴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비투엠 엔터테인먼트, 액세스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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