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백영화 ‘아티스트’가 상을 휩쓰는 걸 보면서 이거다 싶었어요. 그게 딱 우리 시절 이야기거든. 충무로 황금기 때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다고요.”

1960~197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 신성일 씨(75)가 탱고를 추고 노래를 부른다. 오는 25일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시네마 토크 콘서트 ‘신성일의 프로포즈’에서다. 신씨는 이 공연에서 그동안의 대표작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영화에 얽힌 사연과 자신의 이야기를 토크쇼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함께 보낸 영화감독 이장호 씨도 추억의 영화여행에 힘을 보탠다.

40년 단골집이라는 서울 충무로의 진고개 식당에서 신씨를 만났다. 검정색 선글라스에 백발의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직접 몰고 온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전성기 때처럼 날렵했다.

“경북고 동창생들이나 비슷한 연배의 배우들도 지금 이만큼 건강한 사람이 별로 없어요. 피눈물 나도록 엄격하게 건강을 관리했죠. 술 담배 안하고 한창 때는 보디빌더들하고 같은 헬스장에서 운동했어요. 감옥에서도 운동은 게을리하지 않았으니까. 지금도 아령은 항상 손에 잡히는 거리에 둡니다.”

그가 출연했던 영화는 모두 514편. 그중에서 주연작이 506편에 이른다.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하숙생’ ‘동백아가씨’ ‘초우’ 등 그가 주연했던 흥행작들은 패티김, 이미자 등이 부른 동명의 영화 주제곡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공식 무대에서 그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그런 그가 이번 공연에서는 영화 ‘이별’과 ‘맨발의 청춘’ 주제가를 부른다.

“1960년대에는 배우가 노래 잘 부르면 유흥업소 무대에 서야 했어요. 일수 찍듯이 365일 출연 계약을 맺고 하루 펑크내면 이틀을 보상해야 했지. 술주정뱅이들 앞에서는 도저히 노래 못하겠더라고. 한 번 들어가면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도 힘들지요.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져 빚쟁이들한테 엄청나게 시달릴 때 한 업소 주인이 백지수표를 들고 왔는데 그때도 절대로 안 넘어갔어요.”

그는 이번 공연에서 이만희 하길종 신상옥 유현목 등 한국영화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던 시절의 숨은 에피소드들을 들려줄 계획이다. 공연 중반에 이장호 감독이 색소폰을 불고, 그는 탱고를 추며 무대를 달군다.

대표적인 재즈보컬 말로가 음악감독과 편곡자로 참여해 당시 유행했던 영화 주제곡을 색다른 느낌으로 재해석한다.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알리, 뮤지컬 배우 정상훈과 박은미는 영화 주제곡을 편곡해 들려준다.

“현재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가 240만명이나 됩니다. 이 작품을 해외에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우선 10월에 있을 미국 LA코리안 퍼레이드에 먼저 보이려고 준비 중이에요. 죽기 전에 영화도 한 편, 기왕이면 연애를 잘 아는 감독과 멜로 영화를 찍어보고 싶네요.” (02)2230-6601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