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 스릴러 '간기남' 팜파탈역 박시연 "진한 정사장면 요구에 감독과 한 달간 싸웠죠"
에로틱 스릴러 ‘간기남’(감독 김형준)의 초반 기세가 무섭다. 12일 개봉 직후 그동안 극장가를 지배해온 첫사랑에 관한 로맨스 영화 ‘건축학개론’의 열풍을 꺾었다.

‘간기남’은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의 줄임말. 간통 사건을 전담하는 형사(박희순)가 살인 사건에 연루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관람객의 시선은 형사를 유혹해 위험에 빠뜨리는 팜파탈(요부) 박시연(33)에게 쏠린다.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는 관능미를 물씬 풍긴다. 13일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팜파탈’이라든가 ‘글래머’란 수식어가 제게 따라붙는 게 싫었어요. 스트레스였죠. 그런데 그런 역할로 감독들이 찾아주니까 캐릭터가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더군요. 그 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 되니까요.”

그녀는 전작 ‘마린보이’에서 팜파탈로 나왔고, ‘사랑’에서도 사랑하는 남자의 삶을 망치게 하는 비련의 여인이었다. ‘간기남’의 수진 역도 요부이지만 ‘센’ 모습만 지닌 건 아니다. 때로는 순수한 면모로 연민을 자아내면서 관능미까지 뿜어낸다. 전라(全裸)의 뒤태를 드러내는가 하면, 빗속에서 형사와 키스신을 펼친다. 남편의 장례식장에서는 진한 섹스신으로 스크린을 뜨겁게 달군다.

“시나리오에는 세운상가에서 비를 맞으며 키스하는 신 정도가 있었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진한 정사 장면을 요구하는 거예요. 감독님은 팜파탈로 형사를 유혹하는 신이 꼭 필요하다고 고집하더군요. 감독과 한 달간 싸웠어요. 울기도 했고요. 결국 중간 정도로 수위를 조절했어요.”

그녀의 상대역 박희순은 박시연의 입장을 배려했다. 정사신에 앞서 손동작까지 세밀하게 맞춘 뒤 한 번의 촬영으로 끝냈다. 수진이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형사와 정사하는 이 장면은 그녀의 캐릭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10월 촬영한 이 정사신이 유독 힘들었던 이유는 결혼식을 한 달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

“남편이 영화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편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거든요. 소개팅한 지 1년1개월 만에 결혼했어요. 저는 20대 초반부터 빨리 결혼하기를 꿈꿨어요. 결혼을 하니까 혼자일 때보다 둘이어서 좋네요.”

그녀가 연기하는 수진은 남편의 변태 성향으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얻은 여자. 촬영에 앞서 수진 역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팜파탈에 관한 영화를 봤다. 할리우드 영화 ‘클로이’에서 한 여자에게 무섭게 집착하는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잔상이 뇌리에 남았다고 한다.

“아만다처럼 매력적인 배우로 기억되기를 바랐어요. 수진 역은 과하게 연기하면 모자란 것만 못한 캐릭터예요. 대사도 적으니까 표정 변화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었죠. 장례식장에 가기 전 빨간 립스틱을 바른 뒤 지우는 표정에서 속내를 살짝 드러내 보이는 식이었어요.”

‘간기남’을 본 팬들은 대체로 스릴러답지 않게 코믹하고 웃기는 장면이 많다고 얘기한다고. “‘코믹 스릴러’란 독특한 장르예요. 코미디를 따라가다보면 스릴러의 긴장이 깨질 수 있지만 잘 극복했어요. 억지로 웃기는 게 아니라 자연스런 상황으로 웃기니까요.”

그녀는 박희순이 상대역으로 먼저 캐스팅된 상태에서 출연 제안을 받았다. 흔쾌히 수락했다. ‘세븐 데이즈’에서 박희순을 처음 본 순간 저런 배우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기 때문.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 애드리브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무겁지 않고 풀어진 형사 캐릭터를 잘 소화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이번 영화가 제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던 ‘사랑’(220만명)을 넘어서기를 바라요. 앞으로는 순탄한 삶에서 밝은 성격의 배역을 해보고 싶어요. 실제 제 성격이 털털한 편이거든요.”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