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몰리는 '댄싱퀸' 1위…新복고 바람
요란한 불빛이 번쩍이는 20년 전 나이트클럽.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국내 클럽들을 장악했던 런던보이즈의 댄스곡 ‘할렘 디자이어’가 귓전을 때린다. 손님들은 이 곡에 맞춰 디스코를 춘다. 그들은 당시 유행했던 청 재킷이나 어깨에 힘이 들어간 정장 재킷을 입고 있다.

‘신촌마돈나’로 불린 여대생 역 엄정화와 법대생 역 황정민은 그곳에서 춤을 추다 나온 뒤 거리에서 민주화 시위대 학생들에게 우연히 휩쓸린다. 황정민은 시위대로 오인돼 경찰의 곤봉을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간다. 초등학교 동창인 엄정화와 황정민은 이 사건을 계기로 결혼하고 40대에 접어들어 서울시장과 댄스가수로 제2의 인생에 각각 도전한다. 나이트클럽과 민주화 시위는 이들 부부에게 도전 의지를 북돋는 꿈과 낭만의 자양분 역할을 한다.

인터넷에는 칭찬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영화 ‘써니’가 중년층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그 시대를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이라면 이 영화는 남편을 위해 꿈을 포기하고 살아왔던 중년 여성들이 예전의 자기 꿈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레인디어) “얼마 전 엄마가 보셨다기에 나도 봤는데, 기대에 부응하는 영화더군요. 강추합니다.”(귀비 이씨)

복고풍 이야기로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 ‘댄싱퀸’이 설 연휴 극장가에서 흥행 선두로 나섰다. 지난 18일 개봉한 이 영화는 24일까지 11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두 주인공의 인연을 그리기 위해 1980년대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복고풍 코드로 향수를 자극, 20대뿐 아니라 30~50대 관객을 끌어들인 것이다.

지난해 방송 프로그램 ‘쎄시봉’과 영화 ‘써니’ 등의 복고 바람이 올초부터 다시 문화계를 강타했다. 우리 경제의 주요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30~50대를 겨냥해 1980년대와 1990년대 풍속들을 곳곳에 배치한 영화와 공연들이 쏟아지고 있다.

다음달 2일 개봉하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부정부패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노태우 대통령 집권 당시 ‘범죄와의 전쟁’을 모티프로 부산지역의 조직폭력배 일당과 수완 좋은 로비스트가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개한다. 인물들은 종친회와 교회 등에서 인맥을 쌓아 돈을 벌지만 결국 서로를 의심하고 배신한다. 숱한 조폭과 부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는 대중의 심리를 반영했다. 주제곡은 당시 유행했던 가요 ‘풍문으로 들었소’이며 원조 아이돌 그룹인 소방차의 노래도 등장한다.

공연 중인 주크박스 뮤지컬 ‘롤리폴리’는 중년 친구들의 과거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1970~1980년대 팝송으로 엮었다. ‘맘마미아’로 유명한 뮤지컬 배우 박해미와 가수 장혜진, 걸그룹 티아라의 효민과 지연 등이 출연해 신구 세대의 조화를 꾀했다.

1980년대 아이돌인 영국의 팝 그룹 듀란듀란이 오는 3월12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내한 공연을 한다. 지금은 중년이 된 여성 팬들의 티켓 예매율이 높다고 공연 관계자들은 전한다. 영화 ‘써니’의 주요 테마곡 ‘써니(Sunny)’를 부른 1980년대 인기 그룹 보니엠도 27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내한 공연을 펼친다.

강유정 문화평론가는 “경제불황으로 살림살이가 힘들 때 대중문화계에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풍도 강렬해진다”며 “‘댄싱퀸’에서 촌스럽지만 낭만을 엿볼 수 있듯이, 현실의 불만을 다양한 방식으로 반영한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