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정치요? 제게는 어울리지 않아요…대통령도 사랑도 영화로 말하죠"
영화 ‘부러진 화살’(19일 개봉)은 거장의 화려한 귀환을 예고하는 작품이다. ‘남부군’ ‘하얀전쟁’ 등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65)이 13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에 벌써부터 갈채가 쏟아지고 있다.

석궁 테러 사건을 극화한 이 작품은 법 질서를 준수하지 않는 사법부의 모순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고발한다. 석궁 테러는 재임용을 위한 교수 지위 확인 소송에서 패한 대학 교수가 2007년 1월15일 담당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한 사건. 실제 석궁이 발사됐는지, 판사가 상해를 입었는지에 대해서는 의혹 투성이지만 당시 사법부는 이 사건을 법치국가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짓고 유죄 판결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정 감독의 두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안성기 씨(60)가 주인공인 대학 교수 역을 해냈다. 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석궁 테러 사건은 예민한 이야기죠. 그러나 고발 중심이었다면 다큐멘터리지 저같이 상업적인 기성 배우에게 어울리는 영화는 아니었을 거예요. 시나리오를 읽어 보니 약자가 강자에게 당하는 영화 구조였고, 주제도 예술적으로 승화돼 있더군요. 시사회에 참석한 분들이 ‘적역이다’ ‘재미있다’는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부러진 화살’은 기존의 법정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운 장면들을 잘 포착했다. 안씨가 연기한 피고인 김경호 교수는 직접 법전을 들추며 판사와 검사들의 잘못을 지적한다. 궁지에 몰린 판사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변호인은 ‘법은 쓰레기’라고 외치면서 진실을 밝히려 안간힘을 쓴다.

“김 교수는 분명 지나친 구석이 있어요. 융통성이 부족하다고 할까요. 근사한 사람으로만 그려서는 안 되겠다 싶어 진짜 인물처럼 양면성을 다 보여줬습니다. 이는 상업영화 주인공에게 애정어린 시선을 주는 것과 다르지요.”

완고한 김 교수 역이 그에게 잘 맞는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이에 대해 그는 ‘라디오 스타’의 한물간 매니저 역처럼 편안하게 연기하기 어렵고 껄끄러운 인물을 무난하게 소화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거기에는 정 감독의 공이 컸다고 했다.

“배우에게 감독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정 감독과 20년 만에 함께 작업했는데 세월의 간격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어요. 충무로에서 60대 원로 감독이나 배우들을 거의 찾기 어려워요. 감각이 늙었다고 투자자들이 외면하니까요. 그러나 이 영화는 젊습니다. 촬영감독은 단조로운 법정에서 다양한 심리를 잘 잡았어요. 판사 역의 문성근 씨는 김 교수와 팽팽하게 날이 선 느낌을 정말 잘 표현했고요. 또 다른 판사 역의 이경영 씨도 모호한 감정을 잘 그렸습니다. ‘부러진 화살’은 감독의 나이가 많아도 사람에 따라서는 더 깊이있고 재미있는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그는 설 연휴에 경쟁하는 영화 ‘페이스 메이커’에서는 주인공 마라토너 김명민을 지도하는 감독 역을 해냈다. 카메라가 주연인 김명민에게 맞춰지는 까닭에 단선적인 인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고.

“‘페이스 메이커’ 촬영 때 직접 뛰지 않고 초시계만 누르고 있으려니 답답하더라고요. 하하. 수십년간 운동을 해온 터라 체력은 40대 초반인 것 같아요. 지난해 3D 액션물 ‘7광구’에서 복근을 보여줬더니 팬들이 놀라더군요.”

그는 일부 언론에 보도된 출마설은 오보라고 했다.

“정치는 제게 맞지 않아요. 저는 모든 것을 영화로 말하고 싶어요. 대통령도, 사랑도 영화를 통해 보여줄 겁니다. 현실에서는 소시민적으로 살고 싶어요. 일부 언론에서는 저와 통화조차 하지 않았는데 인용부호를 써가며 보도합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다만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죠.”

그러나 그의 공식 직함은 수십 가지다. 주요 영화제의 집행위원이나 조직위원으로 올라 있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선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이며 신영균예술재단 이사장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지만 쉽지 않습니다. 집에서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는 취미 정도만 즐기죠. 멀리 여행은 못 갑니다. 수십년간 그렇게 살아왔어요. 경조사를 챙기는 일도 만만찮아요. 매월 경조사 비용만 웬만한 샐러리맨 월급 정도는 나가죠. 그러나 직장인처럼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부업도 일절 없으니 다양한 직함을 꾸려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