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팎이 커다란 미술관 같다. 작업실 한쪽 벽에는 키 2m70㎝의 나무 여러 개로 만든 작품이 세워져 있다. 제목은 '음악으로 꿈꾸다'.작품에 쓰인 목재는 배재학당 건물의 마루판으로 쓰였던 것이라고 한다.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을 세운 게 1885년이니 벌써 126살이나 먹은 나무다. 통영국제음악제에 출품했던 '윤이상 날다' 시리즈도 한쪽 벽면에 가득하다. 바닥에는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다.

'음악 그리는 화가'로 유명한 이순형 씨(56)의 아틀리에는 미술과 음악의 이미지를 함께 보듬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 목현동에 있는 2층짜리 건물 '더무지치'.남한산성,뉴서울 CC와 가깝다.

이곳에 둥지를 튼 지 6년 됐다. 처음엔 두 집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제법 집이 많이 들어서 마을을 이뤘다. 흰색 블라우스 위에 까만색 겉옷을 겹쳐 입은 이씨의 첫인상은 '꿈 많은 여학생'이다.

"지난 주말 서울시여성가족재단과 함께 서울여성플라자에서 '동물 환상곡으로 펼치는 상상그림축제'를 열었어요. 아동생활시설인 '성로원' 어린이 30여명을 초대해 음악 · 미술 · 놀이를 통합한 예술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었죠.'더무지치 앙상블'이 신동일 작곡가의 창작곡 '동물환상곡'을 들려주고 아이들과 동물 그림 그리기 시간을 가졌어요.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죠."

천장에는 동물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들을 걸고 그 사이로 음악이 흐르는 동안 아이들은 저마다의 꿈을 채색했다. 음악회에서 들은 동물 이야기와 인상 깊었던 대목을 나무판에 그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의 마음도 해맑아졌다.

오는 23일에는 산골학교 운동장 음악회도 연다. 경북 청송 안덕초등학교 전교생 54명과 함께 신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이다.

"아이들이 제 작품 터널 속으로 마구 뛰면서 물감 호수를 거쳐 커다란 광목 캔버스에 발자국 그림을 그리는 이벤트예요. 소방관이나 과학자 등 자신의 꿈을 적은 깃발을 들고 운동장에 설치된 작품 터널 속을 달려서 네모난 프레임이 있는 곳에서 큰소리로 '나의 꿈,나의 희망'을 외쳐요. 그러면 스피커에서 그 소리가 울려퍼지죠.그런 다음에는 파란꿈,녹색꿈,노란꿈,분홍꿈 물감 호수에 맨발로 들어가서 마음껏 물감을 묻히고 운동장에 깔린 커다란 캔버스에 발자국 그림을 남기며 지나가요. 마지막엔 깃발꽂이에 자신의 꿈 깃발을 꽂는 거죠.장래 희망,자신과의 약속을 땅과 하늘에 대고 하는 방식인데 이런 걸 통해서 예술을 온몸으로 체득하게 하는 거예요. "

이 행사에는 체임버오케스트라도 참여한다.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중 여러 마디를 들려주면서 아이들과 호흡을 맞춘다. "아이들은 오른손에 탬버린,왼손에 캐스터네츠를 들고 색색의 조끼를 입고는 음악에 맞춰 점프를 하면서 어느 순간 색깔별로 작은 원덩어리를 만들죠.서로 부둥켜안고 말이에요. 재현부로 돌아가면 또다시 흩어지면서 새로운 동작을 만들고요. 이 연주와 어린이 퍼포먼스는 20~30분 정도 진행하는데 일종의 클래식 음악 즐기기 프로그램입니다. "

그는 그림이든 음악이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즐기며 배워야 제 것이 된다고 말했다.

"규격화되면 안 되지요. 저도 미대를 나왔으면 이렇게 못 했을 거예요. 어릴 때부터 이불을 뒤집어쓰고 부모님 몰래 방송을 들으면서 대사를 줄줄이 외우며 자랐어요. 혼자 연극도 하고요. 제가 과수원집 셋째 딸인데,아침 일찍 과수원에 가면 들깻잎에 이슬 방울이 맺혀 있었죠.그 싱그러운 아침 공기와 물 내음….지금도 생생해요. 소 여물을 끓일 무렵의 노을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탱자나무 울타리 그림자도 제 작품 곳곳에 스며 있지요. "

이처럼 오감을 일깨우는 '자연 속의 기억'들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학교 다닐 때 미술반과 방송반에서 활동한 그는 1970년대 말부터 전시회를 열었다. 1982년 KBS 음악방송 스크립터로 일하며 회화의 이미지와 음악의 리듬을 본격적으로 접목하기 시작했다.

"작곡가 신동일 씨가 어린이 음악에 관심이 많았어요. 국악적인 요소를 도입하려고 했죠.뉴욕에서 공부하던 중에 그쪽으로 필이 더 꽂혔대요. 귀국해서 한국적인 멜로디와 국악 요소를 접목하려던 중 제 그림을 보고 12곡을 붙여서 동물 시리즈를 만들었어요. 이 곡과 그림을 무대음악으로 선보인 게 '동물 환상곡'의 시초죠.국립합창단과의 인연으로 시작한 헨델의 '메시아'뿐만 아니라 말러,브루크너 등의 곡에 이야기를 붙인 작품까지 계속했네요. "

그의 작품 중에는 나무 소재가 유난히 많다. 작업실에도 원목 재료가 쌓여 있다.

"나무를 밀폐된 공간에서 찝니다. 소금물로 샤워를 시키는 거죠.그 상태로 말리고요. 이 작업을 세 차례 반복하는데 이렇게 해야 나무에 좀이 슬지 않거든요. 나무의 성질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색을 칠해도 서서히 본래의 나무색으로 돌아가려고 하지요. 그 성질을 잘 활용하고 이겨내야 색감이 제대로 살아나요. "

나무 재질을 다루는 일은 이렇게 오래 걸리지만 그는 그 '시간의 나이테'를 즐긴다. 그렇게 기다렸다가 나무 위에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려넣는 작업은 주로 밤에 한다.

"아무래도 집중이 잘 되지요. 오랜 습관이기도 해요. 딸 둘이 음악을 했어요. 큰애는 바이올린,둘째는 비올라를 했죠.선화예고와 예원학교를 다녔는데 새벽부터 두 아이 도시락을 싸서 학교 데려다주고 오면 몸이 축 처지잖아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에 작업하는데,하다보면 금방 새벽이에요. 잠시 눈이라도 붙일까 하다가 그러면 못 일어날 것 같아 아예 눕지 않게 돼요. 그 생활이 몸에 밴 거죠."

큰딸 이준서(31)는 나중에 전공을 바꿔 지금 잘나가는 비올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작은딸 우연(26)은 비올리스트의 길을 걷다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연주의 꿈을 접고 밴쿠버에서 스타벅스 스토어 매니저로 일한다.

예술가 집안의 핏줄은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일까.

"아버지는 완고하고 보수적인 분이었지만 단 한 번도 '안 돼' '하지 마'라는 말씀을 안 하셨어요. 어릴 때 일본에서 공부하다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학업도 제대로 못 마치고 귀국해서는 고생을 많이 했죠.소장사부터 시작해서 규모가 아주 큰 과수원을 일군 부농(富農)이었는데 절대로 부정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 점이 우리의 예술적인 감수성을 키워준 게 아닌가 싶어요. "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에는 상상력의 잎들이 폴폴 날아다니는 듯하다. 꽃이 활짝 핀 화분에 수직으로 그어놓은 현악기 줄 세 가닥,첼로의 심장부에 모셔진 꽃,색채와 배열이 제멋대로인 피아노 건반….이처럼 캔버스와 오선지,나무와 물감,음악과 그림으로 자신을 채색하는 그의 꿈은 늘 아이들과 이어진다. 그가 어릴 때부터 꾸었던 '꿈의 선율'을 미래의 그들도 풍성하게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다.

만난 사람 = 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