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연기할 때까지 비슷한 역 계속 골라"
이상우 "힘든 사랑, 이만하면 된 것 같아요"
연상의 이혼녀, 미혼모, 아니면 유부녀였다.

그가 지난 4년간 사랑에 빠진 상대는.

좀 다른 선택을 하는가 했더니 웬걸, 남자를 고르기도 했다.

이만하면 '상식적'이지는 않다고 할 수 있겠다.

배우 이상우(31). 현재는 KBS 주말극 '사랑을 믿어요'에서 정신적으로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

아내와 별거하고 있다지만 이혼은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유부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재벌 2세 한승우 역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란다.

"힘든 사랑은 이제 이만하면 된 것 같아요. (웃음) 사실 매니저가 말렸는데 이번 역할까지는 하겠다고 우겨서 했어요. 그런데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

최근 삼성동의 소속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지난 역할들을 생각하니 마주앉는 순간부터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왔다.

그도 한편으로는 쑥스러운 듯, 한편으로는 스스로 생각해도 웃긴 듯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는 은근히 유머감각이 있었다.

약간 자학개그 같은 느낌도 들었다.

2005년 단막극으로 데뷔한 이상우는 2007년 '조강지처클럽'을 시작으로 '집으로 가는 길' '망설이지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거쳐 '사랑을 믿어요'까지 연속극 5편에 잇달아 출연하며 모두 어려운 사랑 연기를 했다.

"제가 굉장히 내성적이고 느립니다. 요즘 신인들은 어느 정도 연기를 배워서 나오기 때문에 첫 작품에서도 5-6년 한 지금의 저와 비슷하게 연기해요. 그런데 전 그나마 그동안 계속 비슷한 캐릭터를 파고들었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왔어요.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이거라도 제대로 하자'는 제 욕심에 '한 번만 더 해보자'를 외치다 어느새 다섯 작품 연속으로 비슷한 느낌의 힘든 사랑을 하게 됐네요."

그는 "계속 연속극을 한 것도 내 선택이었다. 긴 호흡의 드라마에서 선배님들께 배우는 게 정말 많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안내상, 김상중, 윤다훈, 이재룡 등 선배님들로부터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배웠다. 내가 그분들께는 무척 안쓰럽게 보였던 것 같다. 다들 팔 걷어붙이고 지도해주셨다"며 웃었다.

데뷔 6년째지만 이상우는 여전히 가공되지 않은 원석같은 느낌이다.

대학에서 식품생명공학을 공부하던 그는 2003년 배우를 꿈꾸는 친구를 따라 지금의 매니저를 만나러 나갔다가 '덜컥' 발탁됐다.

"믿지 않겠지만 중학교 때까지는 개그맨을 꿈꿨어요. 제가 툭툭 던지는 말에 사람들이 웃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썰렁하다'는 말을 듣게 되면서 자신감을 급격히 상실했죠. 그 후에는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고 운동을 시작했어요. 원체 깡말랐던 탓에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시작했는데 몸이 좋아지면서 보디빌더를 해볼까 싶기도 했어요. 식품생명공학과에 진학한 건 약을 개발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는데 알고 봤더니 우리 과 졸업해서는 연구원이 못되고 제약회사 영업하는 쪽으로 빠지더라고요. (웃음) 배우가 안 됐으면 저도 지금쯤 제약회사에 입사해 영업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배우 제안을 받고 한 달간 고민을 했는데 내 내성적인 성격을 개조하기 위해서라도 한번 부딪혀 깨져보자고 생각했다"며 "처음에 연기를 하도 못해 너무 힘들고 창피했지만, 그 시간들을 버텨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상우는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지만 한편으로는 대범하기도 하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동성애자 역할을 맡은 것이 그렇다.

하마터면 그저 그런 불륜남 전문 연기자가 될뻔했던 그를 새롭게 주목하게 한 역할이었다.

그는 송창의와 짝을 이뤄 안방극장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인생은 아름다워' 역시 쉽지 않은 사랑이겠구나 싶었지만 동성애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상대가 여자가 아닐 뿐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보다는 김수현 작가님의 작품에 제가 폐를 끼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죠. 그래서 동성애자 역을 맡기까지는 고민이 없었는데 막상 부딪혀보니 어렵긴 했어요. 상대역인 송창의 씨의 눈을 처음에는 어색해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으니까요. (웃음) 하지만 금세 적응됐고, 그 작품 안 했으면 후회할 뻔했어요. 정말 많은 것을 피부로 배웠거든요. 실제 동성애자가 아니냐고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상관없어요. 저만 떳떳하면 되니까요. 그보다는 극중 동성애 분량이 좀 편집된 게 아쉬웠어요."

그는 "연속극에 계속 출연해 아주머니 팬들이 많았는데, 동성애 연기를 하니 많이 떨어져 나갔다고 하더라. 하지만 반대로 젊은 팬들이 생겼다"며 웃었다.

이상우는 앞으로 자신감을 갖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제가 그간 작품의 흐름을 깨는 행위를 너무 많이 했어요. (웃음) 제 연기를 보며 조마조마해하신 순간이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또 그런 모습을 보며 '과연 쟤가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하는 궁금함도 유발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제 연기를 통해 재미와 감동을 주고 싶어요."

이상우는 극중에서 늘 힘든 사랑 끝에 결실을 봤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사랑을 믿어요'에서 그는 처음으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떠난다.

"이번 작품은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역이라 선택했다. 이전 역할과 다른 점이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며 웃은 그는 "다음 작품에서는 경쾌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