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미디어 키우자] (1) 케이블TV, 현상 유지에 급급…자체 제작 않고 '재탕 방송'만
유재석이 진행하는 MBC 예능프로 '무한도전'은 지난달 18일부터 25일까지 6개 케이블채널에서 68회나 재방송됐다. 일요일 하루 동안만 무려 13회나 재방영됐다. 이 프로그램이 지난 한 해 동안 재방송된 횟수는 5개 채널에서 2133회나 된다.

올 들어서는 횟수가 더 늘었다. 1~5월에만 7개 채널에서 1140회 방영된 것.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2736회가 방영될 전망이다. 매주 한 편씩 제작되는 이 프로그램은 케이블방송을 떠돌며 연간 편당 50차례 이상 재방송되고 있다.

SBS 'TV동물농장'은 재탕 횟수가 더 많다. 지난달 24일 하루 동안 6개 채널에서 20차례나 재방송됐다. 지난 한 해 동안 재탕 횟수는 무려 3230번에 달한다. 올 1~5월엔 2058회,연말까지 4939회에 달할 전망이다. 연간 편당 100회 정도 재방송된다는 계산이다.

지상파 프로그램 '순간포착,세상에 이런 일이' '1박2일' '거침없이 하이킥'과 '지붕뚫고 하이킥' 등도 올해 2500회 이상 방송될 것으로 보인다. 1~5월 재방송 횟수 상위 10편 중 '순간포착'만 지난해보다 횟수가 소폭 줄었을 뿐 나머지 9편은 횟수가 늘었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조사한 케이블채널의 재방송 실태다. 채널 수는 많지만 인기 콘텐츠만 반복 방송하는 게 케이블 업계의 현실이다. '케이블채널은 재방송채널'이란 말이 입증됐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는 국내 케이블채널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보다 외부에서 구매해 방송하는 데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콘텐츠를 제작한 채널은 전체의 절반에 불과하다. 방송통신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187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중 자체 제작 실적이 있는 곳은 전체의 51%인 96개다. 등록 채널은 많지만 대부분 재방송으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는 증거다.

자체 제작 실적이 있다 해도 편성 비율이 10%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1~5월 주요 케이블채널 편성 비율을 보면 코미디채널은 지상파 프로그램 재방송 92%,자체 제작 8%로 나타났다. E채널도 재방송 93%,자체 제작 7%였다. 드라맥스는 지상파 프로그램 재방송 비율이 100%였다.

케이블업계 시청률과 경영실적 '톱10'(2008년 기준)의 지상파 계열 PP도 마찬가지다. SBS 드라마플러스는 자체 제작 비율이 4%에 불과했고,MBC드라마넷은 14%에 그쳤다. 그러나 MBC드라마넷은 매출 949억원,순익 62억원,SBS드라마플러스는 매출 672억원,순익 152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반면 자체 제작 비율이 높은 TvN의 영업이익률은 -22%,엠넷미디어는 -1%로 적자 늪에 빠져 있다. '롤러코스터' 등으로 인기몰이를 한 TvN의 자체 제작 비율은 78%,'슈퍼스타K' 등을 만든 엠넷은 96% 수준이다. 특히 엠넷은 설립 후 17년간 대부분 자체 제작물을 선보였지만 여전히 적자다. TvN 등 10개 채널을 보유한 CJ미디어도 매출 1590억원,손실 336억원을 기록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CJ미디어가 제작한 콘텐츠 분량은 연간 164만분인 데 비해 KBS MBC SBS 계열 20개 안팎 케이블채널이 제작한 콘텐츠 분량은 75만분으로 CJ미디어의 46%에 불과했다.

지상파 드라마를 재탕하는 케이블채널들의 영업실적은 나는 반면 자체 제작물로 승부하는 채널들의 실적은 기고 있다. 한마디로 구매 비용보다 제작 비용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지상파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구입해 방송하는 게 자체 제작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실정이다.

제작비를 살펴보면 예능 프로그램은 편당 5000만~1억원,드라마는 편당 2억원 안팎이 소요된다. 이에 비해 구입비는 예능 프로그램 편당 300만~400만원,드라마는 편당 1000만~2000만원이다. 미드(미국 드라마)도 편당 700만~1000만원이다. 구입비가 제작비의 10분의 1도 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청률과 광고 수주는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이런 사업 환경 때문에 국내 1개 PP의 콘텐츠 제작 실적은 미국 1개 PP의 14% 수준이다. 2008년 국내 187개 케이블채널의 연간 제작 편수는 5700여편이었지만 미국에서는 565개 채널이 9만3600여편을 만들었다.

수출 규모는 더욱 미미하다. 2008년 미국 PP의 수출액은 92억달러인 데 비해 국내 케이블채널의 수출은 280만달러였다. 미국의 0.03%다. 이는 지상파를 포함한 국내 방송 콘텐츠 전체 수출의 5% 수준이다.

지난해 방송산업 실태조사 결과 179개 PP 중 56%인 101개의 매출이 50억원 미만이었다. 93개 PP는 당기순손실을 냈다. 이 중 66개 PP는 자본잠식 상태다. 국내 케이블업계가 얼마나 영세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돈 잘 버는 PP들이 제작을 외면하는 마당에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는 영세 PP들이 자체 제작에 나설 리 없다. 싼값의 콘텐츠 수급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홍명호 케이블TV방송협회 팀장은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는 풍토에서는 미디어 산업 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할 수 없다"며 "재방송만으로 손쉽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깨야 한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