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찍…발랄…섹시…걸그룹 올 가요계 평정
올 한 해 동안 미디어를 장악했던 걸그룹들이 가요시장까지 석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9인조 소녀시대가 연초 음악차트를 점령한 이후 4인조 2NE1과 브라운아이드걸스,7인조 애프터스쿨 등이 여름을 지나 겨울까지 선두권을 달렸다. 발라드를 앞세운 솔로들의 돌풍은 초가을에 잠시 불었을 뿐이다.

음악포털 도시락(www.dosirak.com)이 올 1~11월 유료 다운로드 순위를 조사한 결과 4인조 2NE1의 'I don't care'가 1위를 기록했다. 3월 빅뱅과 함께 '롤리팝'으로 데뷔한 이래 초고속으로 정상에 오른 것.2NE1은 'Fire'(12위)'kiss'(30위)'Pretty boy'(50위) 등 4곡을 100위권에 진입시켰다. 그룹 멤버들이 저마다 솔로와 듀엣 등으로 활동해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멤버 산드라박의 'Kiss',박봄의 'You and I',공민지와 씨엘의 'Please don't go' 등이 대표적이다.

브라운아이드걸스는 '아브라카다브라'로 2위에 올랐으며 '캔디맨'(35위)과 '마이스타일'(59위) 등도 인기 목록에 올렸다. 소녀시대는 '소원을 말해봐'와 'Gee'로 3,4위를 차지했다. 여성 5인조 카라는 'WANNA'로 7위,5인조 포미닛은 'Muzik'으로 10위에 각각 올랐다.

이로써 남성가수 빅뱅(5위),동방신기(6위),리쌍(8위)을 제외하고 톱10 중 7개를 걸그룹이 차지했다. 이달 들어서도 애프터스쿨의 '너 때문에'가 2주 연속 1위에 오르는 등 걸그룹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걸그룹들은 데뷔 앨범을 성공시킨 뒤 멤버들이 각자 솔로로 활동하다 뭉쳐 2개월에 한 번꼴로 앨범을 내며 대형 브랜드 그룹으로 성장하는 선순환 행진을 벌인다. 10대뿐 아니라 20~40대도 소비층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연예기획사들의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탄생된 '기획상품'이다. 공급자 중심이던 가요시장을 소비자 중심으로 재편한 주역이기도 하다.

걸그룹들은 우선 주소비층인 10대를 겨냥해 경쾌하고 빠른 댄스곡으로 승부한다. 10대 청소년들은 슬프고 처지는 음악을 더 이상 듣지 않는다.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조차 잘 모를 정도다. 걸그룹들이 입는 짧은 반바지나 스키니진 등은 20대 여성들의 유행아이템이 됐다. 30대 이상 소비자들은 걸그룹의 발랄한 노래와 율동을 뮤직비디오처럼 즐긴다.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걸그룹의 밝고 건강한 모습에서 '해피 바이러스'를 찾아낸다"며 "힘들고 지친 직장과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고 말했다.

기획사들은 걸그룹의 음악과 춤을 대중이 쉽게 따라하도록 만들었다. 강렬한 리듬을 반복하는 '후크송'은 한 두번만 들어도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아 흥얼거리게 한다. 이는 10~15초 정도의 휴대폰 벨소리 등 뉴미디어 환경에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간단한 동작의 춤도 정교한 마케팅의 소산이다. 브라운아이드걸스는 팔짱을 끼고 좌우로 흔드는 '시건방춤'을 춘다. 카라는 뒤로 돌아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엉덩이춤',2NE1은 손가락을 좌우로 가로젓는 '노노노춤'으로 팬들을 빨아당긴다.

다채로운 컨셉트도 각양각색인 대중의 취향을 충족시켜준다. 예쁘고 귀여운 소녀시대는 천사와 공주같은 이미지를 내세운다. 2NE1과 포미닛은 동네 친구처럼 친근하게 다가와 '나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꿈을 팬들에게 심어준다.

애프터스쿨의 멤버 유이는 요즘 미인 기준과는 동떨어진 '큰 얼굴'을 지녔지만 '꿀벅지'(탱탱한 허벅지)를 앞세워 드라마와 무대에서 각광받으며 그룹의 인기도 끌어올렸다.

걸그룹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마케팅에도 적극적이다. '트위터'를 통해 신변잡기를 끊임없이 내보내며 자신들의 활동 상황을 알린다. 네티즌을 친구로 여긴다는 방증이다.

또 팬들을 '서포터즈'로 부른다. 이들이 공연할 때마다 서포터즈들은 기꺼이 돕고 관련 소식을 블로그로 퍼나르며 일반인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에 비해 올 들어 남성그룹들은 잦은 추문으로 카리스마를 상실했다. 동방신기는 소속사와 분쟁 중이며,2PM의 재범은 한국비하 발언으로 그룹을 탈퇴했다.

KT뮤직 최윤선 팀장은 "남성그룹이 장악해온 가요시장을 올해에는 걸그룹들이 지배했다"며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소비층에 바짝 다가선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