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는 행복합니다'의 만수 역
현빈 "행복은 답이 없더라고요"
펑퍼짐한 점퍼를 입고 머리를 덥수룩하게 길렀다고 해서 꽃미남 스타 현빈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에서 현빈이 보여준 모습은 확실히 달라졌다.

그는 달라졌음을 눈빛으로, 온몸으로 말한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현진헌을 연기한 현빈과 '그들이 사는 세상'의 정지오를 연기한 현빈에게서 무언가 다른 점을 느꼈다면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두 작품 사이에 있는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는 현빈 스스로 배우 인생의 "학교 같은 곳"이라고 말하며 애착을 보이는 작품이다.

차기작인 '만추' 리메이크작을 미국에서 준비하고 있지만 영화 시사회에 맞춰 어렵게 짬을 내 잠시 귀국한 이유이기도 하다.

16일 오전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되고 1년이 훌쩍 지나 개봉하게 됐다.

"언제 개봉할까 걱정하지도 않았고 얼마나 많은 관객이 보실까 연연해 하지도 않아요. 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소중한 시간이었고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애착이 가요."

윤종찬 감독은 현장에서 무섭고 엄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빈은 "병 주고 약 주고를 잘하신다"고 했다.

"카메라 앞에 서 있는데 창피할 정도로 야단을 치세요. 그냥 혼낸다기보다는 감정이 잘 안 나왔을 때 그걸 긁어서 끌어내시는 것 같아요. '오케이' 한 다음에는 잘했다고 약 발라주시고. 그러면서 많이 배웠어요."

그는 그 공부가 이후 작품들에서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번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은 버거운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과대망상증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만수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도박에 미쳐 돈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는 형을 묵묵히 떠안는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청년이었지만, 형이 빚만 남기고 자살한 뒤 죄책감과 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린다.
현빈 "행복은 답이 없더라고요"
정신병원에서는 그는 스위스에서 호텔을 경영하는 어머니가 있기에 수표에 사인만 하면 돈이 되는 줄 아는 과대망상증 환자다.

어느 한 장면 쉽지 않았을 거라 짐작이 되긴 했지만 현빈은 "죽고 싶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싶다"고 말했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꿈 장면을 가장 마지막에 찍었는데 수영장에서 5m 깊이까지 내려가야 했어요. 밤에 시작해 아침에 해 뜨고 나왔죠. 감독님한테 '끝까지 저를 안 편하게 해주시네요' 했어요. 감독님도 물에 빠뜨려 드리고."

하지만 정작 그런 몸고생 때문에 힘들었다고 엄살을 피우는 건 아니다.

액션 영화도 아닌데 촬영하면서 몸무게가 4㎏이 빠져 처음 찍었던 장면은 재촬영을 해야 할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노래방에서 간 장면에서 만수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오징어를 골라주고 맥주를 마시다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결국 벽에 기대 눈물을 쏟아낸다.

그때 카메라는 만수의 뒷모습을 비춘다.

현빈 스스로 '가장 충실했다'고 평가하는 이 장면은 '오케이'가 떨어지고 나서 찍힌 장면이다.

물론 정확히 언제 '오케이'가 떨어졌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격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했던 이 장면도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카센터에서 아무 말 없이 차를 수리하던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면을 꼽았다.

"첫 촬영한 장면이에요. 부담감이 컸나봐요. 만수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했지만 그렇게 생각해왔던 것들이 맞나 고민하면서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었어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많은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 영화 제목을 질문으로 바꿔 던졌더니 예상과는 다른 답이 돌아왔다.

"저도 처음부터 영화 제목을 가지고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힘들었던 게, 행복이라는 걸 깊게 생각해보니 답답해지더라고요. 답이 없어요. 여전히 단정지어 얘기하진 못하겠어요. 동전의 양면이라는 생각은 들어요.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eoyy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