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일어나요. 신부에게 키스해요. 하객들은 이럴 때 보통 박수를 쳐요."

14일 오후 서울 명동의 한 예식장에 정색한 톤의 스컬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랑은 일어나 신부에게 키스했고, 하객들 사이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은 tvN의 코미디 프로그램 '롤러코스터' 작가의 결혼식 날이었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인기코너 '남녀탐구생활'의 성우 서혜정이었다.

'엑스파일'에서 스컬리 목소리로 유명했던 성우 서혜정은 '남녀탐구생활' 덕분에 요즘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있다.

TV를 틀면 그의 목소리가 나오는 광고가 보이고, 인터넷에는 그를 흉내 낸 UCC 동영상이 쏟아진다.

이지적인 건조한 스컬리 목소리로 황당한 내용을 말하는 것이 포인트다.

"처음에 제의를 받았을 때는 제가 프로그램을 망칠까봐 부담스러웠어요. 예능 프로가 처음이기도 했고, 감독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첫회 방송을 보고 무릎을 쳤어요. 요즘은 애드리브도 넣을 정도로 즐겨요."

인기 때문에 코너가 길어지면서 요즘은 하루 만에 녹음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그는 "코너 원고가 A4용지 30장인데, 이 정도면 교양 프로 1시간 분량"이라며 "리듬감도 없이 일정한 톤으로 빨리 말해야 하니 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런 어려운 작업 속에서도 그는 '남녀탐구생활'에서 색다른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엑스파일' 스컬리를 연기할 때 저는 스컬리로 살았어요. 다른 프로그램 더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남녀탐구생활' 내레이션을 할 때는 저 자신인 서혜정으로 사는 거죠."

코너를 하면서 광고 섭외도 몇 편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 TV에 나오는 광고가 모두 그가 직접 작업한 것은 아니다.

한 요구르트 광고를 비롯한 몇 편을 빼고는 모두 '패러디'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이 작업한 것이다.

그는 "'패러디'라고 하니 이해는 되지만, 굳이 '오리지널'을 두고 다른 사람을 불러 작업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나온다.

가을 개편 이후 MBC FM '별이 빛나는 밤에'에 고정 출연하고 있으며, SBS TV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나와서는 마음 놓고 망가지기도 했다.

아침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와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행보를 그는 "후배들을 위한 초석"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저는 성우로서 황금기를 마지막으로 누린 사람이에요. 라디오 드라마도, '엑스파일'을 비롯한 외화 더빙도 제가 마지막 세대죠. 앞으로 성우는 목소리만으론 안 될 거에요. 후배들에겐 자신을 '연기자'로 인식하고 세상을 넓게 보라고 하죠."

배우들이 애니메이션 더빙 작업에 참여하는 것에도 그는 긍정적이다.

지금도 '애니메이션 겨울연가'에서 준상(배용준 분)의 어머니 역을 맡아 작업 중인 그는 "더빙 때도 배우들은 액션을 생각하고, 성우는 어떻게 소리를 입힐 것인가에 집중한다"며 "두 접근방식을 서로 배우면 얻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후배들에게 공연이나 전시도 많이 다니고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주문한다.

그는 "가령 샤갈 그림의 강렬한 색채를 보고 어떻게 목소리로 표현할지 고민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만하면 일이 정말 힘들고 고될 것 같지만, 그는 "영화와 만화를 워낙 좋아하니 성우는 일이라기보다는 즐거움"이라며 활짝 웃었다.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comm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