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유혹', '아내가 돌아왔다', '미남이시네요'

1997년 할리우드 영화 '페이스 오프'는 인간이 성형수술을 통해 변신할 수 있는 최고 경지를 보여주며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속 니컬러스 케이지와 존 트라볼타는 첨단 의학으로 서로 얼굴을 통째로 떼어내 맞바꿔 이식한다.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2006년에 선보인 김아중 주연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전신 성형으로 새롭게 거듭난 여자의 이야기다.

이 영화 역시 관객 662만 명을 모으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쯤 되면 변신이 아니라 '둔갑'이다.

그런 둔갑술이 최근 2년간 브라운관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점하나 찍다가 2인 1역까지


지난해 SBS 일일극 '그 여자가 무서워'는 교통사고로 안면이 심하게 훼손된 여주인공이 몇 차례의 성형으로 다른 인물로 거듭나 자신을 파멸로 이끈 남자에게 복수하는 이야기였다.

또 올해 5월 막을 내린 SBS 일일극 '아내의 유혹'에서는 물에 빠져 죽은 줄 알았던 여주인공이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변신한 것으로 등장해 역시 자신을 죽이려 했던 남편에게 복수하는 내용이었다.

두 작품 모두 여주인공을 맡은 유선과 장서희가 1인 2역을 펼쳤는데, 별다른 분장 없이 변신 전후의 연기를 펼쳤다.

그러나 극 중에서는 주변인물들이 주인공의 둔갑을 쉽게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쌍둥이와 2인 1역까지 등장했다.

지난 2일 시작한 SBS 일일극 '아내가 돌아왔다'에서 강성연은 쌍둥이 자매를 연기한다.

사랑에 배신당한 언니를 대신해 똑같이 생긴 동생이 나서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로, 강성연이 언니와 동생의 캐릭터를 상반되게 보여준다.

또 SBS 월화드라마 '천사의 유혹'에서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됐다가 깨어난 남자가 얼굴을 완전히 성형하고 성대수술까지 해 자신을 버린 아내에게 접근, 복수하는 내용이다.

여장남자의 이야기도 있다.

MBC '커피프린스 1호점'에 이어 SBS '미남이시네요'가 남자 행세를 할 수밖에 없는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쉽고 강력한 극적장치..판타지 충족

'아내의 유혹'을 연출하고 '천사의 유혹' CP를 맡고 있는 SBS 오세강 PD는 "우연히 같은 시기에 1인 2역을 그린 작품이 이어지고 있는데, 극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쉽고 강렬한 장치를 찾다 보니 1인 2역이 선호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 PD는 "성형을 통해 변신하는 이야기는 옛날부터 많이 나왔다.

그게 오히려 진부하다고 생각해 '아내의 유혹'에서는 주인공이 점 하나 찍어 변화를 주는 것으로 설정했고, 스토리로 보완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논란이 일었다.

그래서 '천사의 유혹'에서는 아예 2인 1역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2인 1역은 점 하나를 찍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보다는 리얼리티를 훨씬 강화한 측면이 있다.

다만, 시청자로서는 두 사람을 동일 인물로 보는 데 혼란을 느낄 수 있는 약점이 있다.

오 PD는 "배우가 아예 달라지니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할 소지가 있지만, 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두 배우의 버릇과 행동 등을 일치시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작품을 쓴 김순옥 작가는 "사람이 한 세상 살면서 다시 태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나 '다시 태어나면…'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산다.

내가 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설정을 하는 것은 그런 바람의 표현이다"라고 밝혔다.

'미남이시네요'의 조남국 CP는 "쌍둥이는 뒤바뀌고 엇갈린 운명을 그리기에 적절한 장치이고, 무엇보다 혈육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매력적인 소재"라고 말했다.

◇주로 복수에 이용..지나치게 선정적

그러나 이러한 둔갑술이 주로 복수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극적 재미를 위한 장치이긴 하지만, 변신에 대한 판타지를 넘어 지나치게 자극적인 내용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둔갑술을 활용한 드라마들은 대개 시청률이 높았으며, '막장 논란' 속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선덕여왕'을 피해 월화 오후 9시에 편성된 '천사의 유혹'은 지난 3일 시청률 17%를 기록하며 MBC '뉴스데스크'(8.1%)를 배 가량 앞섰다.

한 방송 관계자는 "최근 등장한 일련의 1인 2역 드라마들이 모두 자극적인 내용에, 복수를 다루고 있어 이미 식상해진 측면이 있다"며 "또한 극단적인 설정이 분노를 자극하며 피로감을 줘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