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외로움이 깊어서 늘 사랑연기에 푹 빠져요"
수려한 용모와 깔끔한 매너….정우성(36)은 최고의 멜로 배우로 손색 없다. 손예진과 공연한 멜로 '내 머리 속의 지우개'(270만명)는 개봉 당시 한국 멜로 영화 최대 관객을 동원했고,지금까지 일본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 중 최다 관객 기록을 갖고 있다. 액션물 '무사''중천''데이지' 등도 실상 그를 중심으로 한 멜로드라마였다.

그가 10월8일 개봉되는 허진호 감독의 한 · 중 합작 멜로영화 '호우시절'(好雨時節: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에서 중국 미녀 고원원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중공업 회사 직원(정우성)이 지진피해 이후 재건작업 중인 중국 쓰촨성 청두로 출장갔다가 과거 미국 유학 중 함께 공부했던 메이(고원원)를 만나 벌어지는 로맨스다. 28일 경복궁 근처 한 카페에서 정우성을 만났다.

"시사회에서 남성 팬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더군요. 원래 시인 지망생이었던 주인공이 취직 후 월급봉투와 승진에 목을 매는 보통의 월급쟁이로 적응하다보니 연인에게도 연락을 못하게 된 처지가 남성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나 봅니다. 다른 꿈을 가졌던 사람들의 심경을 대변한다고나 할까요. 제가 출연했던 멜로물들 중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 입니다. "

그가 해낸 '새드무비'의 소방관이나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목수,'데이지'의 킬러,'무사'와 '중천'의 검객 등은 모두 사랑의 팬터지를 위해 창조된 캐릭터들이었다. 그러나 새 영화에서 그가 맡은 중공업 회사 직원이나 고원원이 분한 여행가이드 역은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인물들이란 설명이다.

"국적이 달라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도 이제는 옛날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떠나 다른 나라 사람들과 친구가 되니까요. 그럼에도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이란 설정은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어요. 극적인 모티브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는 거지요. "

그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잔잔한 느낌이 물결치듯 밀려왔다고 상기한다. 사랑이란 주제를 잘 살려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너무 달라진 상황에서 두 연인이 만났어요. 그들은 서로 다른 기억을 이야기합니다. 마치 사랑이란 타이밍이라고 말하는 듯 싶지요. 그렇지만 영화는 또한 진정한 사랑에는 타이밍이 없다고도 얘기합니다. 서로 다른 기억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사랑이니까요. 두 주인공은 각자의 현실에 대해 확인하려들지도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하지 않은 사랑은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든 다시 타오를 수 있으니까요. "

그는 늘 멜로 연기를 동경했다고 한다. 사랑을 갈구하는 자신의 감정과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대상이 없으니까 외롭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것도 사랑하는 행위라고 봅니다. 이성과 함께 손잡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는 로망은 누구나 원하잖아요. "

그는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사랑의 관념이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 급급했지만 이제는 상대를 받아들여 보다 여유있는 사랑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

10여 년간 한솥밥을 먹었던 정훈탁 IHQ 대표와 결별한 정우성은 '토러스'란 매니지먼트 겸 제작사를 차렸다. 차기작으로는 테렌스 창의 중국 무협영화에 출연할 계획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