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영화지도'서 사라진다
수십년간 '영화메카'로 불렸던 충무로에 영화사들이 자취를 감췄다.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 겸 대표가 운영하는 '씨네월드'를 비롯한 3개 영화제작사가 지난달 충무로에서 고양시 일산으로 옮긴 데 이어 이달 말에는 한때 국내 최대의 영화 제작사로 명성을 날린 싸이더스FNH마저 강남구 신사동으로 이사한다. 이로써 충무로에는 '아내가 결혼했다'를 제작한 소형 제작사 주피터필름만 남게 됐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 영화의 중심지로 군림했던 충무로가 사실상 한국 영화지도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탈출 러시 10년 만에 충무로 공동화

충무로 시대가 개막된 것은 한국 영화 전성기였던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진흥업,태흥영화사,황기성사단,화천공사,우성영화사 등이 설립돼 활동하면서 30여 년간 '영화메카'로 자리잡았다. 일제시대부터 소비문화의 중심지였고 단성사와 피카디리 등 주요 개봉관들도 가까웠다. 시사실과 인쇄 광고 마케팅업 등 영화 협력업체들도 입주해 영화 제작과 마케팅 상영까지 아우르는 '원스톱쇼핑'이 가능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들어 대기업과 창투사들이 강남에 둥지를 틀고 투자를 본격화하면서 충무로 전성시대가 저물기 시작했다.

CJ엔터테인먼트,쇼박스,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를 기반으로 한 투자배급사들과 신씨네,태원,강제규필름 등 주요 제작사들이 강남에서 활동했다. IHQ 나무액터스 BH엔터테인먼트 등 대부분의 매니지먼트 업체들도 가세했다. 이로써 2000년대 중반에는 줄잡아 50여 주요 영화 제작 · 배급사 및 편집실들이 강남에 자리잡으며 한국 영화의 강남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2006년부터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일부 영화사들이 높은 임대료를 피해 강남권에서 경기도 고양시 등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지자체가 제작비와 임대료 등을 대폭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해 유치활동에 나선 것이다. 소비 중심지가 다극화된 데다 인터넷과 휴대폰 등 미디어가 발달해 서울 도심과 떨어져도 사업에 큰 지장을 받지 않게 된 사회 현상도 맞물렸다.


◆수도권 서북 벨트가 새 영화메카로

씨네월드가 최근 이사한 곳은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MCT 빌딩 4층.이곳에는 '라디오스타''도마뱀'등을 제작한 영화사 '아침'과 '님은 먼곳에'등의 제작사 '타이거픽쳐스'가 함께 둥지를 틀었다. 강남에서 영업해온 국내 굴지의 녹음 업체 '라이브톤',CG업체 '인사이트비주얼',색보정업체 '2L' 등 후반 작업 업체들도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에 앞서 고양시 화정동에는 마술피리와 나우필름 등이 이주해왔다. 이들 영화사는 고양시 지식정보진흥원이 운영하는 브로맥스 프로그램에 따라 파격적인 임대료로 사무실을 제공받는 한편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고 있다. '씨네월드'의 이준익 대표는 "건물 임대료가 충무로의 30% 수준에 불과해 영화 개발비용을 늘릴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서울 상암과 고양,파주를 연결하는 수도권 서북벨트가 새 영화 메카로 뜰 것"이라고 말했다.

월드컵경기장 근처 서울 상암동에는 내년 1월까지 국내 최대의 영화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와 극장체인 CGV 본사가 강남에서 입주해올 예정이다. 상암동에는 이미 CJ미디어 등 다수 케이블업체들과 영화 '괴물'의 제작사 '청어람' 등이 옮겨온 상태다. 파주에는 아트서비스가 촬영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으며 영화사 단지 조성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박찬욱과 김기덕 감독 등은 파주 헤이리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등 감독과 작가들도 몰려오고 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