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법.방송법 통과로 지각변동 예상
평가절하 시각도..여론독과점 방지가 과제

1년여를 끌면서 여야 간 첨예한 갈등의 근원이 됐던 미디어 관련 법안이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미디어시장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여야의 원칙 없는 다툼 끝에 `반쪽', 또는 `쪽박'이 됐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번 미디어 법안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미디어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전망이다.

이런 언론제도의 변화는 1980년 언론기본법 구도가 정착된 이후 29년만의 일이다.

정치적 보혁 논의를 차치하면 미디어법안의 통과로 우리 사회도 세계적인 미디어 트렌드의 흐름에 동참할 기회를 잡았다는 점에서 이번 법안이 미디어시장에 가져올 파급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신문사와 대기업의 방송 진출의 길이 열리면서 미디어 간 융합의 기폭제가 마련됐고 미디어도 신성장산업의 하나로 거듭날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러나 당초 원안에서 후퇴한 신문법과 방송법이 정부 여당이 기대한 만큼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줄지는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적지않다.

여기에 제도변화에 따라 미디어 시장에 자본집중이 이뤄지면서 방송의 공공성은 퇴색하고 여론 독과점 현상이 나타날지 우려된다는 점도 서로 전망이 엇갈리는 대목이다.

◇`산업'으로서 미디어 = 여론통제를 위해 마련된 1980년 언론통폐합이나 1989년의 방송법, 2000년 통합 방송법 등을 거치면서 공익적 독점구조로 고착되면서 전통적으로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중심으로 방송제도를 발전시켜왔다.

이는 일정부분 방송의 공익성을 구현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간 신문법과 방송법을 비롯한 미디어법은 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하면서 미디어를 내부적인 성장 정체라는 기로에 서게 했다.

이번에 통과된 미디어법은 언론을 `문화'가 아닌 `산업'의 범주에 두고 메스를 들이대면서 세계의 미디어 트렌드에 적극 동참하자는 의지를 담고 있다.

미디어의 경제적 가치와 효율성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이번 미디어법은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그간 일관성이 없었던 신문·방송 교차소유 문제를 정리했다는 측면에서도 평가할 수도 있다.

그간 신문법에 따라 방송사는 신문과 통신사 지분을 소유할 수 있었지만, 신문사의 방송시장 진출은 제한을 받는 애매한 구조가 지속돼 왔다.

따라서 이번 법안은 `산업'으로서 미디어에 주목, 매체 간 칸막이를 걷어내 경쟁을 활성화하면서 글로벌 기업을 육성하고 궁극적으로는 미디어 분야를 국가 경제성장 동력의 한 축으로 키우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신문·대기업의 방송진출 = 미디어시장은 1980년 신군부가 여론통제 필요성에 따라 실시한 신문·방송 겸영 금지 조치로 `칸막이' 구도가 29년간 고착돼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신문사와 지상파 방송의 겸영을 금지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었다는 것이 정부·여당의 설명이다.

야당의 반대에 따라 방송 진입장벽이 당초 제시된 한나라당 원안보다 높아지고 지상파방송에 대한 경영권 행사 시기도 2012년말 이후로 미뤄지게 됐지만 일단 미디어 관련법 시행으로 적잖은 경제, 사회, 문화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새로운 종합편성 채널과 보도전문 채널이 등장하면서 국민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콘텐츠에 대한 신규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또 시대와 환경의 변화로 인쇄매체만으로 수익 창출이 어려워진 신문사들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방송사업에 진출,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각종 유료방송의 등장과 방송환경 악화로 자금난에 몰리고 있는 방송사들로선 대기업와 외국인의 자본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긍정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복합 미디어매체의 출현으로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적거나 형편이 어려운 신문사는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여론 다양성의 위축을 가져오면서 궁극적으로 여론의 독과점 시장이 형성될 수도 있다.

게다가 대기업 자본의 방송 진입은 미디어 시장의 자본만능과 시장지상주의를 팽배하게 만들고 자본에 휘둘리는 미디어를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안감을 씻기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 논리에 짓눌려 사회적 약자층에 대한 미디어 소외가 심화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사후 규제는 강화 = 시장진입의 길은 열어주되 사후규제를 강화한 것이 이번 법안의 숨겨진 내용이다.

그동안 방송법은 체계 없이 방송 원칙만 짜깁기로 나열해놓았을 뿐 이를 실행할 구체적인 방식은 없어 `절름발이 법'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번 법안은 특히 사후규제 차원에서 신문·방송 겸영에 따라 시청점유율 계산을 위한 미디어다양성위원회를 설치해 매체 합산 시청점유율이 30%를 초과할 경우 광고를 제한하거나 추가분 프로그램을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나아가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사에 대해 광고정지, 영업정지, 방송 허가기간 단축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해 경쟁력 없는 방송사업자를 퇴출시킬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방송법에 매체 영향력 지수를 개발토록 한 것과 맞물려 신문법에는 여론 다양성 확보를 위해 여론집중도를 조사해 공표하는 제도도 도입됐다.

이런 사후규제 강화는 방송시장의 자본투입과 함께 무임승차하는 방송없이 저마다 콘텐츠 질의 향상을 높일 것이고 이는 그동안 저평가된 광고 단가를 올려 신문과 방송 모두 상생하는 구도를 기대케 하고 있다.

그러나 신문법 개정안은 신문의 발행부수와 유가부수, 구독수입, 광고수입을 신문발전위원회에 신고토록 한 규정과 신문의 무가지와 경품 금지조항도 삭제, 신문시장을 지나치게 시장경쟁 구도로 몰아갈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효과에 대해선 `갸우뚱' =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미디어법 관련 연구보고서를 통해 "방송 부문에 대기업을 통해 자본 유입이 이뤄지고 이는 사업자 간 경쟁을 불러 침체된 콘텐츠산업 전반에 활력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KISDI측이 추정하는 대로 미디어법안 통과가 최대 2만1천400개의 일자리와 2조9천419억원의 생산유발효과를 발생시킬지는 추이를 좀더 지켜봐야 한다.

게다가 전망의 근거가 됐던 KISDI의 보고서가 왜곡 논란에 휩싸이며 통계수치를 수정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대기업과 신문사에 방송진출의 길이 열렸으나 극심한 경제침체로 선뜻 방송 진출에 투자하려는 대기업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신문사와 기업들은 조심스럽게 시장 진출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디어 규제완화에 따라 정부 여당이 기대하는대로 장차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지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국내 미디어 콘텐츠 분야에서 언어적 한계를 벗고 글로벌 기업 출현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의구심을 자아냈던 측면이 있었다.

다만 통신시장의 규모가 1997년 14조원에서 2008년 47조원으로 급성장하는 동안 지상파 방송시장은 2조3천억원에서 3조5천억원으로 미미한 성장에 그쳤다는 점은 이번 미디어법안의 단기적인 기대치를 높여주고 있다.

앞으로 민영 미디어렙 도입을 통한 방송광고 시장 개편 과정에서 광고시장의 파이가 커지면 이번 미디어법이 방송산업의 정체 구조를 혁파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정주호 기자 joo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