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두비'서 당돌한 여고생 민서 역
백진희 "영화 찍으면서 제가 많이 배웠죠"
영화 '반두비'는 여고생이 주인공이지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여고생이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안마시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장면이 문제가 됐다고 밝혔다.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떼어먹은 악덕 사장의 따귀를 올려붙이는 당돌한 여고생 민서를 연기한 배우 백진희(19)는 딱 그 나이만큼 평범한 사고방식을 가진, 오히려 스스로는 보수적인 면이 있다고 말하는 여대생이었다.

"청소년들이 이 영화를 많이 봐서 주변에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그런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감독님이랑 얘기했었는데 청소년들이 못 보게 됐으니 속상하죠."

27일 오후 홍대 상상마당에서 영화가 끝나고 열리는 관객과의 대화(GV)를 앞두고 그를 만났다.

"관객과의 대화는 처음 하는 거라 긴장돼요. 전주영화제 때 참석을 못해서 영화를 못 봤거든요. 시사회 할 때 그냥 영화보러 갔다 감독님이 관객과의 대화 하시는데 저도 관객석에 앉아 있다 질문을 몇 개 받았어요. 너무 날카로운 질문들을 하셔서 오늘은 시나리오도 다시 읽고 왔다니까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CF 모델로 데뷔한 그는 영화 두 편에 단역으로 출연한 뒤 '반두비'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백진희 "영화 찍으면서 제가 많이 배웠죠"
민서는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안마시술소에서 일하다 손님으로 온 담임 선생님과 소주를 마시고, 우연히 외국인 노동자 카림(마붑 알엄)의 지갑을 주웠다가 그와 얽혀 우정을 나누는 여고생이다.

마음에 안 드는 엄마의 애인이나 한국 여자를 비하한 백인 영어 강사의 급소도 거리낌없이 공격하고, 돈 주겠다며 희롱하는 주유소 사장 아들에게는 차에 넣던 휘발유를 뿌려버리기도 한다.

"먼저 영화를 하겠다고 결정하고 나니까 조금 걸리기는 했어요. 걱정도 됐고요. 안마시술소 장면이나 어른 뺨 때리는 장면 같은 건 어떻게 열 여덟살 밖에 안된 애가 저럴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는데, 연기하다 보니 저와 민서와 차이가 점점 줄어들면서 이해가 갔어요."

낯도 많이 가리고 남한테 싫은 소리도 못한다는 백진희는 "내가 점점 민서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민서는 때묻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혼내줄 수 있었던 거죠. 사실 전 그렇게는 못할 거 같아요."

영화에서 한 취객은 '뉴타운 때문에 망했다'고 주정을 부리고 원어민 강사는 '대통령의 별명이 왜 쥐냐'고 묻는다.

민서 역시 촛불소녀 배지를 가방에 달고 다니고, 보수 신문에 대한 조롱을 내뱉으며 악덕 사장을 훈계한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을까.

"그런 건 크게 부담 안됐어요. 그저 영화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 그냥 제 또래 평범한 아이들처럼 이런 게 이슈가 되는구나 하는 정도지 사회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건 아니었거든요."

버스에서 처음 카림을 만난 민서는 카림의 옆자리가 비었음에도 앉지 않았지만 카림에게 "때는 무슨 색이냐"고 묻고 싸우기도 하면서 점점 '가장 잘 통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전 제가 피부색이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저도 모르게 그런 편견을 갖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어요. 영화 찍으면서 많이 느끼고 배웠죠. 소외된 사람들이 힘들 게 일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고요."

카림과 함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한 장면이라도 상큼하고 여성스럽게 보이고 싶어 '소녀시대' 노래를 골라갔는데 결국 안됐다"며 웃는 그는 영락없는 스무살 여대생이었다.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eoyy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