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거장들과 나란히 경쟁 부문에 초청된 것만 해도 상을 받은 기분이었는데 갈라 스크리닝에서 큰 환호를 받고 상까지 받아 상을 세 번 받은 느낌입니다"

영화 '박쥐'로 제6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은 25일(현지시간) 칸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을 만나 "지금까지 많은 환호를 받아봤지만 이번 환호가 가장 컸던 것 같다"며 "수상을 떠나 관객들이 야유하거나 중간의 나가는 등 망신은 안 당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반응이 열광적이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2004년 '올드보이'로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박 감독은 5년 만에 다시 찾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아 세계적인 거장으로 입지를 굳혔다.

황금종려상 등 더 큰 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뱀파이어가 원하는 모든 피를 다 마실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상의 등급이란 것이 물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상작 그룹에 들어가는 것 자체로 충분히 기뻐해도 좋은 것이고 더구나 올해는 경쟁작들이 유례를 볼 수 없는 수준을 보여서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칸에 초청될 때마다 100% 수상을 자랑하며 칸이 사랑하는 감독의 한 명으로 꼽히는 박 감독은 "한국에서는 중견 대접도 받는데 칸에 오면 어린 감독으로 귀여움을 받는 것 같다"고 웃으며 "같이 거명되는 감독들의 이름을 보면 나 자신이 감독이면서도 스타를 만난 팬처럼 흥분된다"고 말했다.

'박쥐'가 지난 15일 공식 상영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것에 대해서는 "몇 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너무 안 떠나고 오래 박수를 쳐 줘서 부끄러워서 도망치려고 했다"고 돌아봤다.

"그렇게 오래 서서 박수를 쳐주려면 얼마나 다리도 아프고 손도 아플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런데 '마더' 시사회에서 봉 감독과 김혜자를 향해 박수를 치는 입장이 돼보니 10분이고 20분이고 더 쳐줄 수 있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박쥐'의 수상은 위기에 빠진 한국 영화의 부활을 알린 쾌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박쥐' 외에 봉준호 감독의 '마더' 등 역대 최다인 10편의 한국영화가 칸에 초청돼 의미를 더했다.

박 감독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경제적인 효과가 있지는 않겠지만 분위기 반전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당장 몇십만 몇백만 관객보다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박쥐'와 '마더'를 본 칸 사람들이 나한테 축하한다고 하며 '올해 칸은 한국의 해'라는 말도 하더라"고 전했다.

"분위기란 것은 감정의 문제니까요.그동안 한국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좀 멀어져 있었잖아요.이제 바닥을 치고 관심이 생기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박쥐'와 '마더' 등이 상승효과를 일으키면서 1 더하기 1이 2보다 더 큰 결과를 낳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쥐'의 수상은 박 감독 개인에게도 큰 의미로 남을 듯하다.

그는 "'복수 3부작'이 풀코스 정찬이었다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달콤한 디저트까지 끝낸 기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이제 디저트까지 다 먹었으니 '박쥐'는 새로운 식사 시작이냐고 하는데 '박쥐'는 10년 전에 시작한 일이라서 이제 디저트까지 다 먹고 계산까지 한 후련한 기분입니다."

24일 시상식에서 박 감독은 "진정한 예술가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보다"라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에 대해 그는 "예술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머리를 쥐어뜯는 창작의 고뇌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일하는 과정이 아주 재미있고 행복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처음 두 편의 영화를 찍을 때는 나도 고뇌하는 예술가였는데 흥행이 안 돼 오랫동안 쉬었죠. 지금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제작부 막내까지 다 고맙고 나를 즐겁게 만들어줍니다.상을 받으면서 현장의 스태프들 하나하나의 귀여운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이어 그는 "감독은 뭐니뭐니해도 배우가 인정받는 것이 가장 기쁘다"며 주연배우 송강호에게 공을 돌렸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때도 배우가 상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배우가 잘했다고 꼭 주연상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안배 과정에서 상이 정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박 감독은 차기작에 대해 "아직 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다만 최근 너무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다뤄왔기 때문에 생활에서 마주칠 수 있는 보통 사람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장르로 보자면 서부극도 하고 싶다"며 "미국에서 제의가 오면 좋은 서부극 시나리오가 있으면 보내달라고 말하곤 하는데 미국이 어떻게 건국됐는지에 대한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서는 "어떤 작품이냐에 따라 달렸다"며 "좋은 작품이 있으면 방글라데시라도 가서 찍을 마음이지만 블록버스터를 꼭 찍고 싶은 것은 아니기에 기회만 되면 무조건 할리우드에 가서 찍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칸<프랑스>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doub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