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혜 대표의 삶이야말로 영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배우 안성기는 이렇게 말하며 웃는 듯 우는 듯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17일 별세한 영화사 아침 정승혜 대표의 빈소를 18일 새벽까지 지킨 그는 빈소에 이어지는 조문객의 발길을 보며 "정 대표가 정말 많은 사랑을 주고 떠난 것 같다.그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고인과 '라디오 스타'를 함께 작업한 안성기는 "내가 원래 잘 안 우는 사람인데 오늘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면서 "이렇게 많은 정을 주고 떠난 정 대표를 잊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작자와 배우로서는 2006년 '라디오 스타'를 하며 처음 만났지만 두 사람은 이후 영화계 선후배로 끈끈한 정을 나눴다.

안성기는 "정 대표는 내가 정말 예뻐했다. 똑똑하고 당찬 사람이었다"면서 "무엇보다 주옥 같은 영화 카피들로 우리 영화계를 진짜 빛나게 해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3년여 대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뜬 정 대표의 빈소에는 17일 하루에만 500여 명의 조문객이 다녀갔다.

빈소가 마련된 고대 안암병원 303호실에는 줄지어 들어서는 조화들을 놓을 곳이 일찌감치 부족해졌고, 아까운 인재를 떠나보낸 슬픔이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반짝이는 재능과 경력에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던 고인은 자신의 마지막 투병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빈소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할 것을 주변에 부탁하고 떠났다.

하지만 지난 20년 간 고인이 뿌려놓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계 인사들은 열 일 제쳐놓고 빈소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17일 하루에만 강우석 감독, 류승완 감독, 장진 감독, 김유진 감독, 영화인회의 이춘연 대표, 여성영화인모임 채윤희 대표와 배우 안성기, 박중훈, 김윤석, 김선아, 김하늘, 김아중, 이준기, 엄정화, 엄태웅, 수애, 강혜정, 한혜진, 박진희, 구혜선, 이문식, 정태우, 임정은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전날에 이어 18일 오전부터 빈소를 찾은 구혜선은 "어제는 경황이 없어 울기만 하느라 아무것도 못했는데 오늘은 작정하고 일손을 거들러 왔다"며 실제로 조문객들의 식사 시중을 드는 등 팔을 걷어붙이고 빈소에서 일을 거들고 있다.

고인과 44세 동갑내기이자 여성 영화인으로서 20년간 동고동락을 하며 우정을 나눠온 김미희 싸이더스FNH 제작대표는 "고인이 떠나기 전날 병실에서 만나 밝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그는 "떠나기 전날에는 상태가 괜찮았고 기분도 좋은 상태였다.그날 얼굴을 보지 못했다면 평생 한이 됐을 것 같다"며 "고인이 자존심이 강해 투병 중에도 내색하기를 싫어했고 씩씩하게 떠났듯, 남은 우리 역시 고인을 아름답게 떠나보내야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영화인들과 함께 생전에 그의 글과 재능을 사랑했던 많은 네티즌들도 고인의 인터넷 카페에 추모의 글을 잇따라 올리고 있다.

네티즌들은 고인의 인터넷 카페를 통해 '다른 세상에서 못다 이룬 꿈 이루시길', '갑작스런 비보에 가슴이 먹먹합니다.부디 그곳에서는 고통없이 행복하게 사시기를', '하늘나라에서도 지금 모습처럼 항상 밝은 웃음 지으시기를 바랄께요.잊지않을께요' 등의 글을 올리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