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개그콘서트-분장실의 강선생님' 인기

"골룸 분장을 해야 안영미인지 알아보셔요. 이게 약간 안 좋은 점이에요. 하하"

듣고보니 정말 딜레마다.

해괴한 골룸 분장을 해야 비로소 알아본다니…. 하지만 그는 씩씩하다.

"그래도 저의 골룸을 사랑해주시니 그게 어딘가요. 분장해서 창피한 것은 없어요. 오히려 예쁘게 차려입고 못 웃긴다면 그게 더 창피하죠.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면 개그우먼으로서는 실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분장실의 강선생님'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우먼 안영미(26)는 인터뷰 내내 유쾌하고 경쾌한 모습을 보여줬다.

30일 여의도 KBS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장소였던 휴게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와 호탕한 웃음소리를 자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 하나는 컸다.동네에서 유명했다"며 웃은 그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관심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그런데 한편으로는 실감이 잘 안 난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뷰나 출연 섭외 요청은 쏟아지고 있는데 정작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골룸 분장을 하지 않으면.

"사실 어제(29일) 미친 척하고 명동 거리를 혼자서 1시간 동안 돌아다녔어요.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있나 궁금해서요. 그런데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거에요. 간혹 10대들이 '안영미 아냐?'라고 수군대기는 했지만 확신이 안 서는지 그러다 말더라고요. 다른 분들은 전혀 못 알아보셨어요.하하."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여배우들의 분장실을 무대로 선후배 4명의 역학관계를 세밀하게 풍자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여기서 갈등의 핵은 안영미가 연기하는 서열 2위의 '영미'. 그는 위로 하나 있는 대선배에게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살살 기지만 후배 두 명에게는 쥐 잡듯이 못되게 군다.

심지어 후배들은 그보다 나이가 많지만 이 표독스러운 선배 앞에서 쩔쩔맨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이 인기를 끄는 것은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에요. 제 역할을 보고 '우리 선배랑 똑같아요. 그 선배가 이 코너를 꼭 봤으면 좋겠어요'라는 인터넷 댓글이 많은 것을 봐도 알 수 있고, 여성뿐만 아니라 군인들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어떤 조직에서든 이러한 위계질서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죠."

극중 안영미의 대사들은 벌써 유행어가 됐다.

"야, 우리 때는 선배 허락받고 아팠어" "미친 거 아냐?" "완전 어이없어" "다 니들 생각해서 그런거야 이것들아" 등 '주옥' 같은 대사들은 그의 약간 새는 듯한 얄미운 어투를 타고 시청자들의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제가 지금 치아 교정 중이에요. 그래서 발음이 약간 새는데 그게 이 캐릭터와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졌어요. 하하. 앞으로 1년 반 더 교정해야 하는데 코너가 그만큼 장수하면 좋겠어요."

서울예대 방송연예과를 나와 2004년 KBS 공채 19기로 개그맨 생활을 시작한 안영미에게 '조직' 내 위계질서는 생활이었다.

예로부터 연예계 중에서 가장 군기가 센 곳이 개그계였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선배가 후배들에게 단체 기합을 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학교 때부터 늘 기가 센 선배들이 많았어요. 대학 때는 졸업한 선배들이 굳이 학교로 찾아와 애들 기합 주고 군기 잡는 일이 많았는데 잘 못 나가는 선배들이 유독 그랬어요.하하.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 그렇게 심한 선후배 관계는 거의 없어졌지만 어느 조직에서나 여전히 선배들은 후배들을 보며 혀를 차잖아요? 그래서 우리 코너가 인기를 끄는 것 같아요.많이 과장을 하기는 했지만 극중의 제 캐릭터 같은 선배는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는 현재 강유미와 함께 '개그콘서트' 내 개그우먼 중 최고참이다.

밑으로는 후배밖에 없는 처지. 안영미는 어떤 선배일까.

"예전에는 선배들이 '우리 때는~'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면 정말 짜증났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술자리에서 제가 선배들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거 있죠? 하하. 선배가 되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선배 눈에는 후배들이 항상 편해보이는 것 같거든요. 하지만 저나 유미는 군기 잡는 선배들은 아닙니다. 우리가 과거 그런 선배들을 보며 '저렇게 되지 말자'고 결심했거든요."

연기자를 꿈꾸다 우연히 본 개그맨 시험에 합격해 개그우먼의 길로 들어선 그는 그러나 데뷔 1년간 일거리가 거의 없고, 또 도중에 뜨는가 싶으면 얼마 못 가 주저앉는 경험을 하면서 한때는 개그를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 기회는 왔다.

지난해 6월부터 '소비자고발'에서 웃음기 없는 엉뚱한 박사 역을 맡아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하더니 '분장실의 강선생님'으로 마침내 '대박'을 친 것이다.

"최근에 개그의 매력에 새삼 빠져들고 있어요. 사람들이 절 보고 웃을 때의 희열이 너무 커요. 제 미니홈피에도 쪽지가 쏟아지는데 '너 때문에 일주일간 힘들었던 것을 싹 잊게 된다'는 등의 글을 읽으면 제 일이 너무 보람되게 느껴져요."

안영미는 "사람들한테 뭔가 보여주고 그들이 내게 집중하는 것이 너무 좋다.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에너지가 마구마구 솟는다"며 "'너 오늘 진짜 웃겼어'라는 말이 가장 듣기 좋다"며 활짝 웃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