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거품 제거, 규모는 다양해야"

지난달 개봉한 한국 스릴러 '작전'은 관객 153만명을 동원했으나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지는 못했다.

77만명을 모은 '마린보이'는 손익분기점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두 영화는 총 제작비 50억원대의 '평작'이다.

19일 개봉한 스릴러 '실종'은 1주일 동안 37만명을 모았다.

그러나 제작진은 표정이 그리 어둡지 않다.

이 영화에 들어간 '본전' 즉, 순제작비 8억원을 이미 극장에서 뽑았기 때문이다.

'슬픔보다 슬픈 이야기' 또한 사정이 비슷하다.

순제작비 10억원대, 총 제작비 30억원인 이 영화는 이미 O.S.T 음원 등 부가판권으로 돈을 벌어들여 개봉 3주째에 손익분기점 63만명을 넘어섰다.

올들어 중간 규모 영화가 줄줄이 고배를 마신 반면 저예산 영화는 잇단 성공을 거두는 중이다.

저예산 영화의 증가 추세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영진위에 의하면 제작비 10억원 미만 영화는 2005년 16편(개봉작의 19.3%)에서 2006년 25편(23.1%), 2007년 35편(31.3%), 2008년 38편(35.2%)으로 계속 늘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편당 평균 총제작비도 2007년 37억2천만원에서 대폭 감소해 30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들어 달라진 양상이라면 저예산 영화에 손님이 '제대로' 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170억원을 들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668만명, 80억원을 투입한 '쌍화점'은 377만명을 모으고도 손해를 겨우 보지 않은 수준에 머문 것과 달리, 131만명을 모은 '영화는 영화다', 163만명을 끈 '고사-피의 중간고사'는 10억원 안팎으로 제작된 덕에 대박난 영화로 꼽혔다.

특히 '영화는 영화다' 제작진이 고심 끝에 제작비 6억5천만원을 15억원으로 '과대 포장'해 알릴 만큼 한 때 저예산 영화에 대한 인식은 "대중적인 재미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었지만 이런 편견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올해 들어 제작비 1억원인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상업영화 못지않은 200여 개 스크린을 차지하고 상업영화 부럽지 않은 280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실종',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주연배우들이 거마비 정도의 개런티만 받거나 출연료를 제작비로 투자했다는 점, 상업영화의 평균 제작비보다 낮은 비용을 들였다는 점을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예산 영화가 한국영화의 탈출구가 될까.

일단 호황일 때보다 시장이 작아졌으니 적은 예산으로 수익성을 높인다는 전략 자체는 긍정적이다.

충무로의 고질적인 악습으로 지적됐던 제작비 거품이 이제야 빠졌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건강한 산업을 위해서는 다양한 규모의 영화가 고루 만들어지고 고루 성공해야 한다는 것은 영화계 안팎에서 통용되는 상식이다.

저예산 영화의 성공은 일단 높이 평가할 일이지만 모든 영화가 저예산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

한국영화의 '허리'로 여겨졌던 총 제작비 30억-60억원대 상업영화가 줄줄이 고배를 마시다 보면 이미 심각한 충무로의 투자에 악영향을 끼치고, 이런 중간 규모의 영화들의 제작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 총 제작비 30억-60억원인 영화가 전체 개봉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05년 48.2%, 2006년 51.9%, 2007년 48.2%였지만 지난해에는 27.7%로 급감했다.

올해도 순 제작비 10억원 안팎의 영화에 투자사, 제작사의 시선이 몰리고 있다.

올해 중간 규모의 상업영화가 흥행한 사례는 총제작비 40억원대의 '과속스캔들' 1편 정도다.

저예산 영화에 충무로의 관심이 쏠린 와중에도 올해 '해운대', '전우치' 등 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블록버스터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어 제작 규모의 양극화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영진위는 지난해 영화산업 분석 보고서에서 "제작비의 감소에도 수익성이 쉽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며 "저예산 영화의 증가는 산업의 침체기에 형성된 틈새에 창작기획 인프라의 층을 두텁게 하고 다양한 시도의 장을 제공하지만 그보다 큰 규모의 영화에 비해 해외시장이나 부가시장 없이 수익구조를 만들기가 더 힘들다"고 지적했다.

국내 최대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김정아 대표이사는 지난달 말 취임 기자회견에서 "저예산 다양성 영화의 증가는 긍정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한국영화 위기의 대안은 아니다"며 "해답은 해외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