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그들이…'서 매력적인 드라마 PD

"20대에는 무조건 사랑해야하고, 또 열정적으로 사랑해야한다고 생각해요."

현빈(26)이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다시 한번 여성들의 가슴에 큐피트의 화살을 적중시켰다.

지난달 27일 첫선을 보인 KBS 2TV '그들이 사는 세상'(극본 노희경, 연출 표민수)을 통해서다.

극중 능력있고 매력적인 드라마 PD 정지오 역을 맡은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지오 속에 녹아들며 '현빈의 재발견'을 이뤄냈다.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드라마 '눈의 여왕'과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에서는 몸에 안맞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해 보였던 그는 그러나 3년 만에 부쩍 성장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강남역 인근 '그들이 사는 세상' 촬영 현장에서 만난 현빈은 "촬영하면서 '연기가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듣기는 했는데 실제로 반응이 좋아 다행"이라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예전에 비해 편안해졌어요.이유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예전에 비해 많이 편해진 것 같아요.또 드라마 내용이 경쾌하고 재미있다보니 스트레스도 별로 안 받습니다.여유를 갖고 연기를 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습니다.확실히 뭔가가 달라지긴 했어요.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나 현빈의 연기력이 어느날 갑자기 좋아진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이 드라마 직전에 윤종찬 감독의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에서 가난으로 과대망상증에 빠진 남자 역을 맡아 데뷔 이래 처음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며 연기를 펼쳤다.

트렌디 드라마 속 백마탄 왕자님이 아니라 사회의 밑바닥에서 절규하는 연기에 도전한 것으로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소개돼 호평받았다.

"그 영화는 데뷔해 사랑을 받고 난 후 다시 제로에서 시작하는 마음으로 촬영했습니다.두달 동안 하루하루 촬영장에 나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나를 쥐어짜고 긁어내는 연기를 하며 너무나 많은 고민을 했어요.덕분에 많은 공부를 했고 그동안 잊고 있던 부분들을 되찾은 것 같아요."

이러한 '극기 훈련'을 거친 덕분인지 그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눈에 띄게 연기가 자연스러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두 여자 준영(송혜교)과 연희(차수연)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모습이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감정을 핀셋으로 집어내는 듯한 노희경 작가의 대본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역시 어느새 지오를 소화해낼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다.

"노 작가님 대본은 무척 어려워요.한 장면에도 이 감정, 저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어가있어요.눈물을 글썽거리다가도 담백하게 대사를 쳐야하는 식이죠. 그래서 배우들은 괴로워하는데 작가님은 그것을 즐기세요.'내가 힘들게 작업했는데 배우도 힘들게 연기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하세요.(웃음) 하지만 그런데도 이 드라마는 참 재미있어요."

◇"20대에는 무조건 열정적으로 사랑해야죠"


지오의 사랑은 쿨하다.

칙칙하거나 들러붙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책없이 가볍지도 않다.

솔직해서 자유롭지만 경망스럽지는 않다.

그냥 사랑에 충실하다.

그래서 사랑 그 자체를 설레게 만든다.

"솔직히 전 늘 형들과 생활해서 연애관이 지오에 비해서는 좀 보수적이에요.하지만 지오처럼 연애를 하고 싶기는 해요.쿨하게 만났다가 헤어질 수 있는 사랑. 노희경 작가님이 1회를 보고 전화해서는 '지오를 보니 가슴이 설렌다'고 하셨어요.(웃음) 사실 제 나이에는 그런 식으로 연애를 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막상 현실의 공간으로 들어오면 실천이 잘 안된다는 거지만.(웃음)"

그래서 그는 지오를 연기하며 대리만족을 톡톡히 느끼고 있다.

"저는 헤어진 연인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하지만 지오와 준영이는 그러니까 재미있어요.또 그게 현실적으로 그려지잖아요.요즘은 촬영장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지오의 인생을 사는 재미가 쏠쏠해요.아무래도 노 작가님은 연애 박사인 것 같아요.대본을 보면 구석구석 연애의 심리를 너무나 세밀하게 묘사해 놓아 무릎을 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에요.연애를 아주 많이 해보신 것 같아요.(웃음)"

'지금은 사귀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답한 그는 "이 직업을 가지면서 안타까운 것은 사람을 사귈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내 나이에 사랑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눈치 안보고 연애 좀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기가 뭔지 그 해답을 즐겁게 찾아가는 중"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그들이 사는 세상'을 통해 다시 각광받는 그에게 '대중이 현빈에게 원하는 이미지가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라고 답한 그는 "결국은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대중이 내게 원하는 것을 잘 조화하는 것이 관건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촬영장에서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졌어요.하고 싶은 연기를 하며 보상도 받고 있으니 행복한 것이더라구요.하지만 이 직업이 사람들이 날 찾아줘야 유지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니까 좀 서글퍼지기도 했어요.우리는 결국 선택을 받는 직업이잖아요.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텐데 우선은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가야하는 거잖아요.그렇지 않고 내 고집만 세웠다가 일이 잘못됐을 때는 너무나 많은 비난을 받게 되니까요."

그는 "'나는 행복합니다'는 변신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선택한 영화가 아니다.그냥 내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라며 "그 영화가 내 선택이었다면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의 모습은 대중이 내게 원하는 모습일 것이다.앞으로도 그 둘을 잘 버무려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다부지게 밝혔다.

그렇다면 현빈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일까.

"주관식 답 중 '생략'이라는 것이 있잖아요.그 질문에는 답이 없어 어렵기도 하고 정해진 것이 없어서 마음 편하기도 해요.내 마음대로 하면 되니까.지금은 그 해답을 즐겁게 찾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영원히 못 찾을 수도 있지만.(웃음)"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