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사어(死語)가 될 가능성이 높은 말 중에 대표적인 게 '브라운관 스타'가 아닐까 합니다.


LCD PDP OLED 등 벽걸이형 TV들이 대세를 이루며 100년 이상 텔레비전의 제왕자리를 지켜온 배가 불룩 나온 브라운관 TV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60인치 크기의 PDP TV에 등장한 연예인을 거론하며 '브라운관의 스타'라고 한다면 좀 웃기는 표현이 되지 않겠습니까?


1970,80년대 권귀옥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 코미디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나이로 40대가 넘은 남성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며 "브라운관의 스타"로 군림했었지요.


당시 MBC TV의 최고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에서의 그녀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한 미모 하는데다 무지 웃겼거던요. 뭐 '1970년대 이효리'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권귀옥씨는 1980년대 브라운관에서 홀연 사라지면서 세인들의 기억 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런 그녀가 열흘 전쯤 40대 후반인 제 앞에 브라운관에서 사라질 때와 비슷하게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제 앞이 아니라 15주 동안 1주일에 한차례씩 3시간 가량 '열공'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평균 나이 40대 중반인 30여명의 학생들 앞이겠습니다.


저를 비롯한 이 학생들과의 첫 대면에서 그녀는 '희극배우'로서의 솜씨가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무엇보다 50대 후반의 연세임에도 한 미모하던 모습은 여전했습니다.


그녀는 몇 년 전 공식적인 컴백 이후에 오래전 시청자였을 사람들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수없이 받은 듯 묻기도 전에 먼저 스스로 소개 겸 대답부터 꺼냈습니다.


"저 많이 늙었지요? 못 생겨져서 죄송합니다. 제가 옛날엔 계란형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계란 후라이형으로 바뀌었지요? 과거엔 제 몸매가 '깜찍'했는데 지금은 '끔찍'하게 변했지요?"


이런 선제 공격형 대답에 누가 감히 "그래요. 참 많이 늙었네요. 정말 못생겨 졌네요. 진짜 끔찍해 진 것 같아요"라고 대꾸할 수 있겠습니까?


그녀가 의도한(?)상대방의 대꾸나 반응일 것으로 보이는 "아니요. 미모가 여전한데요.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아직도 깜찍해요"라는 말이 쏟아졌습니다.


사실이 그랬습니다. 그녀는 50대 후반의 경륜과 지적 풍성함으로 무장된 아름다움이 풀풀 묻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지금은 스스로 '흙장난'으로 칭하는 도예 갤러리의 대표, 아침 드라마에 출연하는 탤런트, 그리고 사회사업가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이 중 그녀가 가장 애착을 가진 게 해체 가정에 대한 대안으로 손꼽은 수양부모협회(회장 박영숙) 활동으로 보였습니다. 이 단체의 후원회장을 맡아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까닭에서지요.


이 협회는 일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피치 못하게 자녀들을 키울 수 없는 사람들의 자녀를 맡아 수양딸처럼 키우다가 그 부모가 정상적인 생활을 찾았을 때 다시 데려갈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이런 거 아세요? UN이 한국을 '아동학대국'으로 지정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UN을 이끌고 있는 사무총장이 누굽니까. 한국인 반기문 총장 아닙니까?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 아마 유일한 아동학대국일 겁니다."


우리나라가 수십 명의 아이들을 집단으로 수용하는 시설(고아원)을 갖고 있어 '아동학대국'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을 5명이상 집단으로 수용하는 시설은 없다고 그녀는 강조했고요.


2010년이면 국내에서도 고아원 제도가 없어지게 되는 모양입니다. 수양부모협회는 이 때 생길 지 모를 각종 문제점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구성됐다고 합니다.


권귀옥씨와 30여명의 나이 든 학생들이 어제 밤 2008년 9월 16일 호프집에 모였습니다. 그녀는 유머를 앞세워 예의 좌중을 휘어잡았고요.


그녀는 이 자리에서 인생철학으로 삼고 있다는 '3뻐'를 공개했습니다.


"이게 뭔 말인고 하니 여러분이 인정하다 시피 제가 이쁘게 생겼잖습니까? 그래서 '나는 이뻐'가 1뻐입니다. 그리고 바쁘게 인생을 살아가자고 스스로 채근하지요. 그래서 '나는 바뻐'가 2뻐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니 제 주위는 항상 기쁨으로 가득해요. 그런 까닭에 '나는 기뻐'가 3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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