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열한번째 엄마'서 주연 맡아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 가끔 해요.

제가 원래 애들을 무지무지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지금 당장 엄마가 되겠다는 건 아니구요.

(제발 오해하진 말아주세요) 그냥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거죠."

이제는 마흔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김혜수(37)는 더이상 청춘스타가 아니다.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한 이후 하이틴 스타에서 청춘스타로 성장을 거듭해온 김혜수지만 최근 출연작들을 보면 일반적인 청춘스타들의 출연작들과는 거리가 있다.

요염한 도박업계의 마담(타짜)이나 허구헌날 추리닝 차림의 백수 이모(좋지 아니한가) 등의 배역은 일반적인 청춘스타들이 꿰차는 배역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29일 개봉을 앞둔 신작 '열한번째 엄마'에서는 주인공인 '엄마' 역을 맡았다.

"엄마 역이 처음은 아니예요.

2005년작인 '분홍신'에서도 엄마 역을 맡았었거든요.

하지만 '분홍신'은 공포스릴러물이었던 만큼 '열한번째 엄마'처럼 애틋한 모성애를 강조하는 그런 식의 엄마 역은 아니었으니 제대로 된 엄마 역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라고 해야겠네요.

잘 어울린다고요? (생긋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행이네요."

'열한번째 엄마'에서 김혜수는 시쳇말로 완전히 '망가진' 모습으로 나온다.

전작인 '좋지 아니한가'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선보인 적이 있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한발짝 더 나갔다.

"다른분들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던데, 제가 정말 그렇게 많이 망가졌나요? 그런데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그게 그런 배역이거든요.

그렇다면 당연히 배역에 맡게끔 해야죠. 그건 배우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그런 것이 화제가 된다는 것 자체가 좀 우스운 것 같아요.

제가 일부러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구요, 배역 자체가 막장인생이기 때문에 머리도 안빗고 옷도 아무렇게나 입고 그런 거죠, 뭐."

김혜수는 답변에 거침이 없고 당당했다.

많은 여배우들이 갖고 있는, 예뻐보이려고 얌전빼는 태도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저도 옛날에는 연기할 때 몸을 사렸던 적이 있었어요.

꼭 일부러 그런다기보다는 그냥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거죠.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망가져보여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무의식중에 행동에 배어나오는 거예요.

지금은 그런 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지만 배우들이 그걸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최근 들어서야 겨우 스크린에서 어색해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개인적으로도 철이 들었고."

인터뷰를 하다보니 그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이 눈에 띄었다.

"이거 '모던보이' 찍기 위해 만든 머리인데요, 가발같이 보여요? 지금 좀 기른 건데…. 원래는 이보다 더 짧아야 돼요.

(두 손으로 머리모양을 만들어보이며)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그러더니 답답했는지 기자가 들고 있던 볼펜과 수첩을 갑자기 빼앗아들고) 보세요.

제 얼굴이 이렇게 둥글잖아요.

그럼 이런 식으로 눈썹 위를 일자로 자르고 옆머리를 단발머리 비슷하게 한 뒤에 가운데는 다시 이런 식으로 가리마를 타야 돼요."

돌려받은 수첩을 보니 김혜수가 직접 그린 짧은 단발머리 여자 얼굴이 초등학생 솜씨같이 그려져있었다.

"'모던보이' 많이 기대된다"고 했더니 "정말 저도 그래요"라고 응수한다.

그러더니 "여기서 '모던보이' 얘기 많이하면 이쪽 영화사에서 안좋아할텐데…"라며 옆사람을 슬쩍 쳐다본다.

"김혜수 씨 정도 되면 훨씬 주목받는 규모의 영화 캐스팅 제안이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 왜 '열한번째 엄마'같은 저예산 영화에 출연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배우가 늘 주목받는 규모의 영화에만 출연할 수는 없는 일이죠. 그리고 전 제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고 싶지가 않아요.

이런 것도 해보고 저런 것도 해봐야한다고 생각해요."

김혜수는 이어 "배우는 끊임없이 연기를 해야 해요.

그러다보면 좀 후진 것을 할 수도 있는 거죠. 배우가 늘 환상적인 연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좋은 감독을 만나고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연기도 빛이 나는 거겠죠."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