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에게 수업을 받은 김상진 감독은 허를 찌르는 상황 설정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내는 영화들을 많이 선보였다.

삐딱한 청춘들의 속시원한 난장판 '주유소 습격사건',학창 시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난 동창생들의 좌충우돌 '신라의 달밤',교도소로 되돌아가려는 탈옥범들의 해프닝 '광복절 특사' 등 개성있는 코미디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김 감독의 신작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황당한 납치극 설정이 눈길을 끄는 코미디 영화다.

어리숙한 납치범들에게 잡힌 '국밥 재벌' 권순분 여사(나문희)가 자신에게 무관심한 자식들에게 분노하면서 오히려 납치극을 주도한다는 이야기.기발한 상황 외에 웃음을 주는 요소는 당연히 배우들의 연기다.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는 강성진·유해진·유건이 맡은 순박하지만 조금 모자란 납치범 3인방은 말과 행동 모두로 관객들을 웃기려 한다.

그러나 베테랑 배우들의 열연에도 시사회 내내 관객이 배꼽을 잡고 웃는 모습은 거의 목격되지 않았다.

유해진이 자신의 이름을 '문근영'이라고 말하거나,거구의 여자에게 겁에 질려 쩔쩔매는 식의 일차원적인 유머로 폭소를 자아내기는 다소 무리인 것 같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그나마 일관되게 유지되던 '웃기겠다'는 의도도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500억원이 실린 열차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코미디가 아닌 액션 영화의 추격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지루하기까지 하다.

돈만 밝히는 세태를 꼬집는 결말 역시 일찌감치 예상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분명 웃자고 만든 영화인데 많이 웃기지는 못한다.

9월13일 개봉.15세 이상.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