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마다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정진영이 이번엔 몸에 힘을 뺀 편안한 연기로 또 다시 강한 인상을 남긴다.

26일 개봉을 앞둔 영화 '날아라 허동구'(감독 박규태, 제작 타이거픽쳐스)에서 IQ 60짜리 아들을 둔 아버지 허진규 역을 맡아 그의 말대로 "모자란 부자(父子)의 험한 세상을 향한 귀여운 치대기"를 벌인다.

허진규는 학교에서 '물반장'을 하는 게 즐거움인 아들 동구가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당장의 목표다.

담임과 교장이 특수학교를 보내라며 아들을 대놓고 외면하는데다 친구들의 놀림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버지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치킨집 사장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처음으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출연해 치킨 배달도 하고, 영화 홍보대사 '마빡이'이와 함께 마빡이 춤을 추기도 하며, 사람들에게 닭을 튀겨주는 이벤트도 하는 등 지금까지 영화 홍보 활동에서 보기 힘든 일을 하고 있다.

"개봉할 수 있게 된 지금, 이 영화에 대해 더 바랄게 없습니다.

시사회 반응이 좋아서 더 좋구요.

많은 분들이 우리 영화의 희망적인 내용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군요."

'날아라 허동구'가 작년 여름 촬영을 끝내고도 개봉일을 잡지 못하자 솔직히 영화가 그저 그럴 줄 알았던 많은 사람들은 막상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현실을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않은 채 꾸미지 않은 진솔함은 어떤 영화적 표현보다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딱 보면 뻔할 것 같은 영화죠. 사실 뻔해요.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관객들이 들으려고 하시더군요.

시사회 반응을 보니 나중에 동구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동구가 최고야'라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원래 동구와 어머니의 이야기였던 시나리오는 그의 제안으로 아버지로 바뀌었다.

"모정을 다룬 영화는 이미 꽤 나온데다 아버지가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은 또 뭔가 다를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올해는 부성애를 다룬 영화가 줄을 잇고 있다.

잠이 안온다는 아들에게 '닭 한 마리가 울타리를 넘어간다' '닭 두 마리가…'라고 되내일뿐 애달아하지도 않고, 아들과 발가벗고 목욕하며, 지금 사는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암이 걸리길 바라는 아버지. "아니 암에 걸리면 아들 혼자 어떻게 살아가라고 집 때문에 암에 걸리길 바라느냐. 도대체 생각이 있는 아버지냐"고 영화속 진규를 타박하자 그는 "그러니까 아버지도 모자란 사람인 거다.

그런 그들 두 부자가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응수한다.

이 영화의 시사회때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을 초대했다.

아버지가 출연한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보는 거였다.

"그만큼 편하게 찍었습니다.

지금까지 작품은 제 안에 있는 어떤 감정을 극대화시키고, 자아를 분열시키는 작업을 거치며 치열하게 했는데 이 작품은 제 모습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됐어요.

제가 아버지잖아요.

뭐라 말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제가 그 감정을 잘 아니까요."

'날아라 허동구'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뿐 아니라 우정도 깊이 다룬다.

정진영은 이 영화의 코드가 "아버지와 짝"이라고 했다.

"아버지에겐 상철이라는 친구가 늘 곁에 있고, 아들에게는 준태가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 사는 힘을 주는 거죠. 이 두 축이 흔들리지 않고 적절히 표현돼 영화가 이처럼 따뜻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의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은 난데없는 고민을 하는데서 알 수 있었다.

"'교도소 월드컵' 빼고는 제가 출연한 영화들이 모두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그렇지만 관객이 저를 스타라고 생각하지는 않죠. 그걸 마음에 두지도 않았고,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는 '난 왜 박신양, 차승원 같은 스타가 아니지'라는 생각과 함께 영화 관계자들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다른 배우가 했다면 뭐든지 화제가 됐을 텐데, 저 때문에 이 영화가 덜 알려지는 건 아닌가 하구요."

정말 뜻밖의 말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맞붙게 되는 '눈부신 날에'의 박신양, '아들'의 차승원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뜻밖의 말에 기자가 멈칫하자 "영화를 보고 '난 이런 영화 싫다'하시는 분들은 어쩔 수 없지만 이 영화를 몰라서 못보는 분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인거죠"라며 정리한다.

영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그의 표현대로 '안하던 짓도 하고 있는 중'인가 보다.

"동구는 행복한 아이에요.

동구 아빠의 현실이 우울한 거지. 동구는 주전자가 있고, 친구가 있으니 부족한게 없습니다.

아빠가 겪는 현실과 동구가 보는 천진난만함이 묘하게 조화를 이뤄 영화가 희망을 향해 갑니다."

그는 어찌보면 상투적일 수 있는 결말에 대해 제작진이 고민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마지막 장면이 정말 상투적일 수 있어요.

그래서 처음엔 동구의 실패로 촬영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영화를 쭉 보면서 상투적이고, 뭐고 필요없었습니다.

찍는 우리조차도 동구의 성공을 바라고 있었으니까요.

영화적 장치를 위해 동구의 실패로 마무리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참 영화라는게 묘하더라. 재주 피우면서 잔머리 쓰면 실패할 수도 있다.

투박하다는 걸 아는데, 그런 투박함이 진심으로 전달되면 관객이 알아주더라"고 말했다.

정진영은 마지막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밝게 이끌어준 권오중이 "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든 일등공신"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