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원(장진영)이 복엽기를 타고 공중으로 솟구칠 때 며칠 전 사고를 당한 동료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로써 고도상승 비행신에는 비장감이 배가된다. 협곡에서 펼쳐지는 속도경주신에서는 박경원과 동료 기베(유민) 간의 견제와 경쟁이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폭풍우 속 비행장면에선 박경원과 관제탑과의 교신이 교차 편집되면서 안타까움과 슬픔의 정서가 강화된다.


윤종찬 감독의 영화 '청연'은 비행신에 다채로운 감정이입 장치를 곁들임으로써 긴장감을 끌어 올린다. 비행장면이 특수효과나 스페이스캠(항공촬영전용 특수카메라장비) 촬영으로만 제시됐다면 평범한 액션신에 머물렀겠지만 인물 간의 길항관계와 긴밀하게 결부됨으로써 감정을 고조시키는 효과를 얻어낸다. 특히 대칭적으로 묘사된 두 가지 핵심 비행장면은 일제시대에 성공한 조선인 여류비행사의 빛과 그림자를 효과적으로 포착한다.


맑은 하늘에서 펼쳐지는 활공 장면으로 채워진 전반부는 희망적으로 그려진다. 박경원의 곁에 연인 한지혁(김주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지혁이 사라진 후반부는 절망적이다. 풍우 횡단장면이나 식민지인의 갈등도 후반부에 등장한다.


박경원이 '매국노'로 질타당하거나 한지혁이 독립군으로 누명을 쓰는 것은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이 겪어야할 불가피한 측면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념문제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이다. 이야기의 중심은 박경원의 야망과 성취욕에 맞춰져 있다. 박경원이 야망을 위해 사랑을 포기한 여자라면 한지혁은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남자다. 어린시절 박경원이 학교에 가겠다고 고집부리거나 비행경연 후보에서 탈락했을 때 내뱉는 절규는 그녀가 선택하는 미래를 짐작케 하는 복선이다. 결국 이 영화에는 민족차별적 요소보다는 승자에게 열광하는 자본주의적 시각이 짙게 배어있다.


박경원의 스타일 변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녀는 전반부에서 주로 단발머리에 단정한 작업복을 입지만 유명해진 후반부에는 화려한 퍼머머리와 정장이 주류를 이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는 초라한 복장일 때가 더 즐겁고 행복하다. 행복은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29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