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배우가 드라마 방영 도중 촬영 거부 의사를 밝히는 사태가 벌어졌다. SBS TV 수목극 '루루공주'(극본 권소연ㆍ이혜선, 연출 손정현)의 주인공 김정은 이 10일 오전 자신의 인터넷 팬 카페에 글을 올려 "더 이상 출연할 수 없다"는 의사 를 밝혔다. 이 글로 인해 방송사와 제작사는 발칵 뒤집어졌고, 김정은 설득 작업에 나서 결 국 "주연배우로서 책임을 끝까지 지겠다"는 의사 번복으로 드라마 촬영이 진행됐다. 주연배우가 방영 도중 출연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은 이례적인 일. 더욱이 단순한 시청률 부진이나 제작진과의 갈등 등이 이유가 아니라 주연배우 스스로 드라마 이야 기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과 극도로 상업화된 제작 풍토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최근 드라마 제작 현실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제작 풍토에 경종을 울리게 했다. '루루공주'는 과도한 간접광고 및 PPL논란과 현실에 동떨어진 내용으로 지적받 아왔고, 결국 시청자들의 비난과 드라마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졌다. 첫회부터 김정은이 모델로 있는 웅진 코웨이를 연상시킨 설정이 눈에 띄었다. 코웨이와 이름이 비슷한 '코데이'가 극중 상표로 등장했고, 김흥수는 이 회사가 최 근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인 비데 판매회사의 영업사원으로 등장했다. 이 때문에 이 설정과 전혀 상관없는 김정은이 '루루공주'가 아닌 '비데공주'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용품들은 거의 PPL로 채워졌다. 김정 은이 "제작사에 제발 드라마의 흐름과 상관없는 PPL을 삼가해달라"고 요구했다는 말 이 들릴 정도다. 압권은 김정은이 들고 있는 강아지 인형. 극중 고희수는 집에 있을 때 강아지 인형을 끼고 산다. 그런데 20여년전의 회상장면에도 그 강아지 인형은 고희수의 손 에 들려있었다. 도대체 말이 안되는 설정이다. 강아지 인형은 '루루공주'가 시작하 자 마자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화제가 됐던 돼지 인형과 함께 대형할인점에서 판 매됐다. 경영 위기를 맞고 있는 방송사들이 간접광고 허용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번 사 건으로 간접 광고가 얼마나 드라마 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게 됐다. 심각한 또 다른 문제점은 전혀 개연성없이 전개된 드라마. 원래 이 드라마는 ' 거짓말' '풀하우스' 등으로 유명한 표민수 PD가 연출을 맡기로 했다 그만뒀고, '봄 날'의 김종혁 PD 역시 합류하려다 결국 포기했다. 김 PD는 최근 "한번쯤 작업해보고 싶었던 좋은 배우가 출연해 연출을 맡으려고 했지만, 대본을 필두로 제작 상황이 말도 안되게 돌아갔다. 연출의 의지가 개입할 틈이 없었다"고 그 이유를 말하기도 했다. '재벌'로 표현되는 상류층을 들여다보고 재벌가의 여성이 평범한 한 남자를 만 나 사랑에 빠진다는, 아주 단순한 스토리 구조마저 촘촘하지 못한 구성과 황당한 설 정으로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이 때문에 김정은, 정준호라는 주연 배우의 화제성으로 드라마 시작 초반 20%를 넘었던 시청률은 10%초반대로 급전직하했다. 20%를 넘었던 드라마의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 역시 방송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무엇보다 드라마를 현재 대중의 기호를 반영하는 문화의 일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제작 의지를 보인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드라마는 가장 센세이셔널하게 대중들의 코드를 짚어간다. 예술적 가치가 중요한 평가 요인이 되는 영화와 달리 대중성에 더 목표를 두지만, 드라마 자체도 현대 사회의 중요한 문화 코드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한류 열풍'을 타고 외국 판매가 외주제작사에 더 많은 판매 수익금이 돌아오자 한류 스타를 캐스팅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는 한편, 스타 배우를 캐스팅해 야 언제든지 편성을 잡을 수 있는 현실로 인해 스타의 몸값만 부쩍 올라갔다. 일부 제작사에서는 스타만 있으면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된다는 식으로 작품 자체에 대한 투자보다는 스타 캐스팅에만 혈안이 돼있다. 시나리오 개발 작업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영화와 달리 편성이 확정된 이후에야 대본 작업을 시작하고 그나마 빠듯한 촬영 스케줄로 '쪽대본'이란 단어가 일상화된 지 오래다. 방송사도 점점 더 제작사에 대한 입김이 줄어들면서 담당 책임 프로듀서 조차 도 드라마 내용을 모르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예전과 같은 통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 드라마의 경우 외주제작사들의 파워는 갈수록 세지고 있다. 방송사와의 관계에서도 불과 2~3년전의 수직적 관계에서 오히려 더 큰소리를 치는 입장이 되기도 한다. 만족스러울 수준은 아니지만 저작권에 있어서도 점점 더 외주사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권리가 늘면 거기에 따른 책임도 커진다. 한 방송사 고위 간부는 "이제 외주사들도 정확히 자신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짚어봐야 한다. 예전에 방송사가 갖고 있던 책임을 이젠 자신들도 나눠갖게 된다. 방송계에서도 상업주의가 만연해있지만 문화는 결코 상업논리로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같이 인식해야 할 때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