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태에 맞지 않더라도, 재미가 있건 없건 어디 한번 '정도'를 가보자고 감독과 약속했다." 지난 5월 세계 영화팬의 눈과 귀가 쏠렸던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극장전'으로 레드카펫을 밟고 왔던 김상경(33). 그가 칸에서 귀국하자마자 4일부터 방영할 MBC TV 월화드라마 '변호사들'(극본 정성주, 연출 이태곤) 출연을 결정지었다. 밤샘 촬영을 했다는 데도 그는 활기찼다. '졸린다'며 오히려 큰 소리를 냈다. 그래야 잠이 깬다나. "시놉시스도 보지않고 이 PD가 설명하길래 그냥 하겠다고 했다. 근데 대본을 받아보니 재미가 없어서 걱정했다"는, 남들이 들으면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만큼 김상경은 작품 자체보다는, 그 작업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우선시하는 배우다. 작년 1월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한창 주가가 올랐을 때 갑작스레 기획해 들어가는 드라마 '신인간시장'에 출연했던 것도 그런 이유.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제작진이 S.O.S를 청하자 두말않고 출연했다. 이 PD와는 그가 '탤런트'로 머물던 시절 출연했던 일일극 '날마다 행복해'의 조연출로 만났다. 이후 이 PD의 연출작인 베스트극장에 두세편 정도 출연했다. 그의 매니저는 "지금은 드라마 할 때가 아니라고 말렸는데도, 전화 받더니 그냥 한다고 하더라"며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작품이 괜찮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산을 좋아한다. 합천 해인사로 향할 때 대본 6권을 챙겨갔다. 거기서 꼼꼼히 읽었다. 그랬더니 감독 말대로 훨씬 재밌더라"라며 나름대로 출연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이태곤 PD와 한가지 약속을 했다. '정도'를 가자는 것. 그의 연기 생활도 차곡차곡, 한단계씩 밟아서 지금까지 왔듯이 이태곤 PD의 전작 '12월의 열대야'도 진득함과 끈기가 묻어있는 멜로였다. "요즘 드라마는 겉모양은 화려해졌는데 속에 있는 알맹이는 맨날 똑같다"고 현 드라마 제작 풍토에 대해 일갈한 그는 "재미가 있건 없건, 비록 요즘 세태에 안맞더라도 정통드라마를 해보자고 감독과 약속했다"고 밝혔다. 드라마 '애드버킷'으로 데뷔했던 그가 또 다시 변호사란 직업을 연기하는 것도 화제가 됐다. "검사와는 우연히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데 약간 고압적이라고 느꼈고, 판사는 윤유선씨 남편을 안다. 너무 점잖은 사람이다"고 말한 김상경은 "변호사는 송사에 휘말리지 않아서 모른다"고 웃으며 말했다. "법정 장면에서도 사실성을 강조하긴 했지만, 사실성을 강조하다 보면 드라마적 장치가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작품은 멜로 드라마이지, 법정 드라마가 아니다"고 못박았다. 작품 선정 기준이 뭐냐고 물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김상경다운 말이 나왔다. 덧붙여 그는 "2005년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작품이 있어서 좋은 건 뭐고, 나쁜 건 뭔지 생각해본다"고 했다. '배우 김상경'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나는 표현이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