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맛이다." 차기작인 `주먹이 운다'의 촬영에 한창인 최민식이 불쑥 내뱉은 말이다. `올드보이'에서 그 유명한 장도리 액션신을 소화해냈고 `꽃피는 봄이 오면'을 거치며 트럼펫 연주자로 거듭난 그가 이번에는 40대의 한물간 권투선수로 변신했다.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주먹이 운다'는 두 권투 선수의 거친 삶과 피할수 없는 대결을 그린 영화다. 길거리에서 매맞아 돈을 버는 한물간 권투선수 태식(최민식)과 패기와 깡이 전부인 소년원 출신 권투선수 상환(류승범)이 영화의 두 주인공. 이들 각자의 거친 삶을 따라가던 영화는 후반부 두 사람의 신인왕전 권투 시합에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현재 전체 분량의 절반 가량을 촬영한 이 영화는 4월 개봉될 예정이다. "날짐승 두 마리가 서로 송곳니를 드러내는 처절한 사투를 보여 주겠다"는 것이 권투 경기 장면에 대한 최민식의 각오. 1월께 촬영될 이 장면에서 최민식과 류승범은 실제로 6라운드 경기를 벌인다. 감독은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NG 없이 경기장면을 담을 예정이다. 최민식은 지난 9월말 추석 연휴부터 지금까지 두 달여 동안 복싱 훈련을 받고있다. "(류)승범이 나이만 되도 잘 될 텐데, 팔굽혀 펴기를 `따따블'로 해도 잘 안되네요." 11일 오후 경기도 성남의 서현역 앞 촬영장에서 만난 그의 몸은 부쩍 단단해 보였다. ▲다시 산 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 한동안 `올드보이'의 오대수로 살고 나온 뒤 최민식은 "`징한' 여자 만나 지지고 볶다가 나온 느낌"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음영화 `꽃피는…'은 편안한 기분으로 촬영에 임한 작품. 그는 촬영장에서 "추운 날민박집 이불 속에 손을 넣고 있는 것처럼 포근하다"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주먹이 운다'는 어떨까? "민박집에서 나와 다시 산 속을 헤매는 것처럼 힘이 든다." 그가 연기하는 태식은 왕년의 복싱 유망주다.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로 은퇴한 뒤 운영하던 사업체가 망해 잔뜩 빚만 지게 되자 그는 전직 복서의 경험을 살려거리에서 돈 받고 매맞는 일을 시작한다. 한참이 지난 뒤 출전하게 되는 신인왕전은 그에게 `막장인생' 이후 다시 일어서기 위한 몸부림이 펼쳐지는 장소이다. "주먹을 어떻게 내지르느냐, 즉 테크닉은 중요하지 않아요.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살아보겠다는 게 얼마나 처절하고눈물나는 일인지, 처음부터 영화를 지켜본 관객들은 경기 장면에서 두 선수 중 누구의 손도 못 들어줄 상황이 될 것입니다." ▲다큐 보고 출연 결심 = 영화 속의 두 남성 캐릭터는 실제 인물에서 뽑아냈다. 그가 연기하는 태식은 일본 도쿄의 신주쿠 광장에서 매맞고 돈을 버는 권투 선수 하레루야 아키라에서, 상환은 소년원 출신 권투 선수로 현재 이종격투기 선수로 활동하는 서철에서 각각 빌려왔다. "시나리오보다는 다큐멘터리였어요." 그는 "하레루야 아키라와 서천의 다큐멘터리를 각각 본 뒤 다른 시간대와 다른 공간의 사람이지만 두 인간의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아 놓는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고 영화에 출연하게된 계기를 설명했다. 다큐멘터리에서 힌트를 얻은 캐릭터지만 그는 "실제로 하레루야 아키라를 만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전기 영화가 아니라 인물의 느낌만을 가져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민식은 영화 속 태식을 마냥 우울하게만 묘사하지는 않을 셈이다. "사실 2002년 월드컵 때 상갓집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은 나왔잖아요. `조악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마냥 우울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길거리에 서 맞아서 상처를 입어도 태식은 웃거든요. 이렇게 밝은 모습이 오히려 솔직한 표정같습니다". ▲류승범 연기에 감동 받았다 = "빈말이 아니라 원래 (류)승범이와는 꼭 같이 연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쭉 지켜봐왔는데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연기가 아주 타고 났어요" 최민식은 영화의 출연이 결정되기 전부터 류승범과의 연기 호흡을 기대해 왔다고 말했다. 선후배를 떠나 동료로써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는 게 그가 평가하는 류승범이다. 촬영은 극중 시간을 따라 진행되는 중이다. 한차례도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은 마지막 신인왕전에서 처음 마주친다. 이 때문에 "아쉽게도" 두 사람은 아직 같이 연기를 하지는 못했다. 간혹 서로의 촬영 장면을 필름을 통해 곁눈질하는 정도. 류승완 감독은 두 배우 사이에 `미묘한 경쟁심'을 이끌어내려고 했고 감독의 계획은 제대로 먹혀들어가고 있다. "얼마전 승범이가 촬영하는 장면을 응원 나온 적이 있었어요. 감각적인 연기와 캐릭터에 대한 이해력을 보니 `나는 저 나이에 어땠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짜식 장난이 아닌데…' 하는 경쟁심도 생기고요" (성남=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