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때는 사랑하는 법을 몰랐을까?"


노시인 알렉산더(브루노 간츠)에게 남겨진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의사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남은 시간을 19세기 그리스 시인 솔로모스의 흩어진 시어를 찾는 여행에 쓰기로 한다.


짐을 정리하다가 그가 발견한 것은 죽은 아내가 30년 전 썼던 편지들. 사실 알렉산더는 아내에게 그렇게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 일에 빠져 지냈고 아내는 외로움을 감춰야 했다.


"그때 나는 사랑하는 법을 몰랐어…" 여행을 준비하는 그의 머릿속은 얼마 남지않은 삶보다 아내에 대한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98년작 '영원과 하루(Eternity and a Day)'가 19일부터 서울 광화문의 씨네큐브에서 상영된다.


199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이 영화에서 감독은 길게찍기(롱테이크)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특유의 방식으로 실제와 상상을 오간다.


딸을 찾아간 알렉산더. 개를 맡아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거절당하고 오랜 기간생활했던 자신의 집을 팔아치웠다는 소식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 함께보냈던 시간이 많지 않아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딸의 집에서 나오는 알렉산더는우연히 알바니아 고아 소년을 만나게 되고 함께 길을 나선다.


죽음을 앞둔 남자에게 하루 같으면서도 또 영원 같은 인생이라는 것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올까? 인생에 대한 깨달음은 여행 중 알바니아 소년이 전해주는 그리스의 시어(詩語) 세 가지를 통해 표현된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의 감정을 뜻하는 `코폴라'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향한 아쉬움, `세니띠스(떠도는 사람)'는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라는 자각이다.

소년이 알렉산더를 떠나기 전에 남기는 `아르가디니(너무 늦었다)'는회한의 순간 발견하게 되는 삶의 영원함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회한을 그리고 있으며 음악이나 화면을 통해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서정성으로 보이지만 감독의 역사 의식은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리스의모습에 부담스럽지 않게 녹아 있다.


소년과 함께 떠난 알바니아의 국경지역 여행에서 감독은 그곳에서 벌어지는 피의 역사를 들춰내고 있으며 버스에서 만난 혁명군의 깃발과 대학생들의 토론은 좌파로 널리 알려진 감독의 생각이 우회적으로 표현되는 부분이다.

상영시간 132분. 전체관람가.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