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권혁호)가 아내 선화(이승연)를 따스하게 껴안는 순간 선화는 그의 뒤켠에 숨어 있던 애인 태석(재희)과 입맞춤을 한다.


민규는 태석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이 결말은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의 성격을 규정한다.


선화가 꿈꾸는 환상에 관한 이야기라고.태석은 선화가 마음의 감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스스로 창조한 일종의 유령이다.




선화는 유령을 향해 '사랑해요'라고 속삭이지만 민규는 자신에게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아내에 대한 의심과 폭행을 멈춘다.


모든 가정의 위선적인 평화와 소유욕이 빚는 남녀의 위악적인 사랑이 이 장면에 담겨 있다.


파격적인 소재와 충격적인 영상으로 논란을 불러왔던 김 감독은 이 작품에서 현실과 환상을 교묘하게 짜깁기해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빈 집을 찾아 며칠씩 머무르는 태석이 어느날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선화를 만난 뒤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실주의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환상적 사실주의로 방향을 튼다.


분기점은 태석이 감옥에서 간수의 뒤에 숨는 '유령 연습' 장면이다.


역설적으로 이 장면은 태석이 영화 속 실재 인물로도 믿어지도록 유도한다.


극중 선화의 직업이 누드 모델인 이유도 위안부 누드로 파문을 빚었던 현실 속 이승연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다.


현실과 환상을 겹쳐놓는 연출 방식은 관객을 충격에 빠뜨리는 한편 극적 흥미를 배가시켰다.


이야기는 선화와 태석의 빈 집 찾기,태석의 유령 연습,선화와 유령의 동거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기다림의 여백'을 상징하는 태석은 그 여백을 찾아가는 인물이다.


그가 빈 집에서 고장난 기계들을 고치는 모습은 망가진 인생을 고쳐주는 구원자임을 시사한다.


선화와 태석이 함께 저울에 올랐을 때 눈금이 '0'을 가리키는 모습은 구원에 대한 환상(태석)이 선화로부터 마음의 짐을 덜어줬음을 뜻한다.


폭력의 이미지는 창조적이지만 전작들에 비해 순화됐다.


태석과 민규는 서로를 향해 3번 아이언 골프채로 직접 구타하지 않고 공을 때려 제압한다.


공이 몸에 직접 맞는 장면은 생략돼 있다.


김 감독은 "가장 덜 사용하는 골프채인 3번 아이언을 무기로 사용한 이유는 선화의 마음을 얻지 못해 폭력적으로 변한 민규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15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