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 두 편의 작품을 출품한 사람은 `올드보이'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주연 유지태만이 아니다. 단편 '웃음을 참으면서'(영제 Fill in the Blanks)로 감독주간에 초대된 김윤성(30) 감독은 지난 17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조감독 자격으로 레드 카펫을 밟았다. "1월쯤일까요? PC방에서 e-메일을 확인하는데 칸 영화제 프로그래머로부터 영화를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더군요. 어떻게 제 영화를 봤나 봐요. 너무 갑작스러웠죠.시사용 테이프를 보내고 나니 며칠 안 있어 초청하겠다는 편지가 오더군요. " '오!수정', '생활의 발견'에 이어 '여자는…'까지 홍감독 감독의 영화 세 편에서 조감독을 맡았지만 그의 단편 '웃음을…'는 홍 감독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 어울릴 법한 재기발랄한 코미디 쪽에 가깝다. '웃음을 참으며'는 16분 분량의 흑백 무성 단편영화. 줄거리의 단서는 한국 제목과 영어 제목 속에 있다. 배경은 기차 안. 등장인물은 이제 막 아이를 낳아 수유기에 있는 30대 여자와 30대 남자, 그리고 외국인 할머니와 그의 손자 등 네 명이다. 영화는 각각 다른 욕구가 있는 네 명의 등장인물의 귀엣말과 표정,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진행되고 대사는 빈 칸(Blank)으로 남은 채 내용에 맞는 음악만 흘러나온다. 관객들은 대사의 빈 칸을 적극적으로 채워나가게 되는 과정에서 웃음을 참을 수없게 된다. 대부분의 단편영화 감독들이 그렇듯이 김 감독은 제작과정의 어려움에 대해 할말이 많아 보였다. 이야기는 캐스팅에서부터 시작됐다. "촬영을 얼마 안 남겨놓고 힘들게 여배우를 찾았는데 못하겠다는 거예요. 젖이나오는 장면도 보여줘야 하고 남자 배우가 가슴을 빠는 장면도 포함돼 있으니 하기힘들었겠죠. 계속 찾아갔다가 딱 네번째만에 힘들게 허락을 받았습니다. 정확히 3회만 촬영하기로 하고요. " 영화는 서울에서 강원도 강릉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촬영됐다. 창밖의 배경도 신경써야 하고 빛의 양을 맞추는 작업도 쉬울 리가 없다. 수없이 강릉행 기차를 타며촬영 준비를 했고 정확히 강릉을 세번 가는 시간에 촬영은 끝났다. '웃음을…'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1기 출신인 그의 졸업작품인 동시에 3부작이 한 편이 되는 장편 시나리오의 프로모션용 단편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들고 아무리 영화사를 찾아다녀도 도대체 답변도 없더군요. 한참있다가 찾아가 보면 제 시나리오는 낙서장이나 메모지로 쓰이고 있었고요. 그래서한번 내 돈으로 빚내서 찍어본 뒤에 (영화사에)보여주자고 생각했죠."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웃음이 있는데 영화는 항상 비슷한 종류의 웃음만 보여주더라"고 말하는 그는 "단 한마디도 진지하지 않지만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는중에 웃음이 나오는 영화"라고 말했다. "다소 딱딱해 보이는 공식 초청 부문과 달리 감독주간은 자유롭게 영화를 관람하고 얘기하는 게 너무나도 마음에 듭니다. 감독주간 초청작들은 칸에 이어 파리,로마, 밀라노 등에서 순회상영이 됩니다. 다른 나라의 영화 팬들이 내 영화에 대해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질문을 하게 될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네요. " 감독의 기대는 칸 현지에서 정확히 충족되는 듯하다. 20일 열린 이 영화의 첫번째 상영회에서 관객들은 신인 감독의 재기에 박수를 보냈고 제목과는 정반대로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