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9/11은 자유가 불타 없어지는 온도이다." 지난 해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미국의 마이클 무어 감독이 이번엔 9.11 테러를 전후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가문과 빈 라덴 일가의 관계를 파헤치고 이라크 전쟁의 추악한 이면을 드러낸 다큐 영화 `화씨 9/11'을 제작, 17일 칸 영화제에서 선보였다. 이라크인 포로 학대행위를 담은 사진들이 공개되기 이전에 제작된 이 영화에는 미군이 이라크인 수감자와 민간인을 학대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영화는 또 테러 배후 오사마 빈 라덴을 낳은 빈 라덴 일가가 부시 일가와 핵심측근들이 운영하는 석유회사와 무기회사에 자금을 댔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작전을 벌이는 이유는 오로지 아프간을 지나는 천연가스 수송관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BBC 뉴스와 CNN은 숨진 아기들과 네이팜탄에 화상을 입은 어린이들, 사지가 절단된 미군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으며 무어 감독은 아직도 배급회사를 찾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무어 감독은 영화 제목을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 "화씨 451도"에서 따왔다고 밝히고 이 온도는 반(反)유토피아적 사회에서 책을 불태우는데 필요한 온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 촬영을 위해 신분을 감춘 3명의 제작진을 이라크 주둔 미군에 배속시키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면서 이라크 노인이 미군의 희롱을 받는 장면은 지난 해 12월 사마라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인들은 진실을 모르고 지나기 원치 않는다. 이 영화는 껍질을 벗겨 속에 든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하고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을 것이며 그에 따른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말로 대선에서 부시 표가 떨어져 나갈 것임을 암시했다. 앞서 무어 감독은 백악관이 이 영화의 제작과 상영을 막으려 했다고 주장하면서 당초 배급 협상을 진행중이던 디즈니사가 백악관과 공화당의 압력에 굴복해 발을 빼는 바람에 오는 7월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영화를 개봉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말했다. 영화를 본 영국 데일리 메일지의 영화평론가 바즈 바미그보이는 "강력한 영화다. 미국인들이 자기집 뒷마당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일을 다룬 이 영화를 볼 수 없다면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어감독에 비판적인 평론가 제임스 로치는 "무어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려 한다"고 꼬집으면서도 영화가 이라크 전쟁의 양쪽 당사자들이 겪은 상실과 양쪽 가족들의 슬픔을 다룬 강력한 장면들을 담고 있다고 지적하고 "찢겨진 삶을 보여주는 직접적이고도 통렬한 묘사방식이 특히 훌륭하다"고 논평했다. 할리우드 리포터지(誌)는 `화씨 9/11'이 "부시 대통령과 그 일가, 그리고 현정부의 외교정책에 관한 분노에 찬 반론"이지만 "토론도, 사실의 분석도, 역사적 맥락에 관한 연구도 없다. 무어는 단순히 현재의 혼란을 한 남자와 그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려 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화씨 9/11' 배급 협상을 진행하다 모회사인 디즈니의 압력으로 협상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진 미라맥스사 측은 영화를 사들여 제3의 배급회사를 찾는 방법을 모색중이라고 밝혔다. 디즈니사 경영진은 11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불편부당성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