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연애는 우연에서 시작돼 필연으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공주병'여고생이 걷어찬 깡통이 외제 컨버터블카를 몰던 운전자의 머리에 맞는다. 차주인 남자대학생은 차를 담벼락에 들이받은 뒤 수리비 변상을 조건으로 그녀와 1백일간의 노비계약을 맺는다. 이햇님씨의 인기 인터넷소설을 영화로 만든 코믹멜로 '내사랑 싸가지'(감독 신동엽)는 여고생과 남대생의 악연 속에서 핀 사랑을 그린다. 대학생 형준(김재원)은 '얼짱'에다 명문대 법대생이며 부유하기까지 하다. 이쯤되면 왕자병 환자가 아니라 진짜 왕자다. 자기 과신형인 그는 막말과 돌출행동을 일삼고 여고생 하영(하지원)을 노비처럼 부린다. 기성세대의 시각으로는 '싸가지 없는'인물이지만 인터넷세대는 가식적이지 않은 솔직함을 높이 평가하는 인물이다. 하영은 설거지와 청소 등을 해야 하는 비참한 현실과는 반대로 친구들로부터 왕자를 유혹한 공주 대접을 받는다. 공주병은 타인들의 시선에서 자라나기 때문에 이 설정은 관계의 지속성을 전제로 한다. 1백일간의 노비계약이 종료된 뒤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역전된다. '열등생' 하영이 자발적으로 형준을 차지하기 위해 대입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처지다. 하영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줄거리를 형준의 시각으로 뒤집으면 '여성 길들이기'에 관한 영화가 된다. 조각상을 살아 있는 여인으로 바꾼 고대 그리스의 '피그말리온'신화를 20세기 영국판 영화로 변형했던 '마이 페어 레이디'를 잇는 '21세기 한국판'변형으로 볼 수 있다. 두 영화는 모두 '인간 조건'은 변화할 수 있다는 근대 계몽주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유사한 관점 탓에 이야기는 일찌감치 해피엔딩의 결말을 노출시킬 만큼 통속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연극 '피그말리온'의 작가 버나드 쇼의 견해를 빌리면 하영은 형준을 결코 사랑할 수 없다. 한때 군주였던 형준에게 편안함을 결코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독은 두 사람의 감정이 사랑으로 수렴되는 대목을 관객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한 채 에피소드들을 꿰어 맞추는 데 급급한다. 조악한 형식미도 관객의 공감대를 넓히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12세 이상.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