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해운대를 찾았는데 칸영화제와 견줄만한 훌륭한 장소에서 회고전을 갖게 돼 가슴벅차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오랜 세월 은거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 액션영화의 대부 정창화(75) 감독은 6일 오전 부산파라디이스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 앞서 감회가 깊은 듯 눈시울을 붉혔다. 이번 영화제기간 열리는 `한국영화 회고전'에서는 「노다지」와 「황혼의 검객」 등 그의 대표작 9편이 초청됐다. 정 감독은 서울음악전문대를 졸업한 후 최인규 감독 밑에서 연출수업을 하다 53년 「최후의 유혹」으로 데뷔했다. 그는 60년 「햇빛 쏟아지는 벌판」으로 본격적인 액션영화 시대를 열었고 68년에는 홍콩으로 진출, 한국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쇼 브라더스와 전속 계약을 하는 등 한국영화의 국제화시대를 예고했던 선구자다. 73년에 만든 그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미국에 수출돼 외국영화로는 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펄프픽션」의 구엔틴 타란티노가 인정한 명작으로 꼽혔다. 그외에 「노다지」(60),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64), 「천면마녀」(68) 등의 대표작이 있다. 정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의 발전에 대해 "불과 8년밖에 되지 않은 부산영화제가 칸영화제나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와 견줄 정도로 대단한 사업을 하고 성과도 거두고 있는데 놀랐다"면서 "부산시민과 한국 영화계의 젊은 기수들에게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쌓은 업적에 비해 오히려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그는 "한창 활동할 때 (국내 영화계의) 편견이 있었다.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등 이에 정면으로 맞서다 미움을 샀다"며 입장을 털어 놨다. 그는 "이후 홍콩으로 건너가 하루 3시간씩 잠자며 현지 감독들의 작품을 연구했고 그 노력덕에 현지에서 인정을 받았다"면서 "많은 감독들이 나의 영향을 받았지만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우삼 감독도 그중 한명이다"고 말했다. "64년「사르빈강에..」를 만들 때 돈이 없어 강원도 양구와 무인도 등지에 야자수를 심어놓고 미얀마의 해변을 연출했을 정도로 열악했다"며 옛이야기를 한 뒤 "요즘은 박찬욱이나 류승완 감독 등 젊은 감독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 한국영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며 젊은 감독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정 감독은 "아직도 영화에 대한 향수가 간절하고 젊은 사람들 이상으로 활력있는 영화를 만들 자신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물러서야 할 시점에 물러났다"고 은퇴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그는 "좁은 한국 영화시장만 바라볼 게 아니라 세계시장을 바라보고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달라"며 후배 감독들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노병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 갈 뿐이다. 나 역시 사라져 가고 있지만 많은 훌륭한 후배들이 정신을 이어가고 있어 내 영화는 영원할 것이다" (부산=연합뉴스) 박창수 기자 swi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