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 작가 쇼데를로 드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는 밀로스 포먼 감독의 '발몽',스티븐 프리어즈의 '위험한 관계',로저 컴블의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등 다양한 제목의 영화로 제작돼 왔다. 이들 영화에선 프랑스 상류층 인사들의 사랑과 욕망이 시대와 상황을 달리해 전개된다. 이재용 감독의 사극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위험한 관계'의 조선시대 버전이다.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전이 적절한 유머,눈부신 색채 및 장식미 등과 결합해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성애영화들이 빠지기 쉬운 난잡함을 극도로 억제했고 사극이지만 현대적인 감각도 충분히 녹아 있다는 점에서 '스캔들'은 차별화된 사극 성애영화로 평가된다. 희대의 바람둥이 선비 조원(배용준)이 자신의 연인 조씨 부인(이미숙)과 정절녀 숙부인(전도연)의 정조를 빼앗는 내기를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랑은 과연 즐기기 위한 게임인가,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인가. 영화는 관객들에게 시종 이같은 질문을 던진다. 숙부인이 엄격한 유교 윤리를 상징한다면 조원과 조씨 부인은 당대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조롱하고픈 개인의 욕망을 대변한다. 복장도 그렇다. 숙부인은 소박하고 단아한 한복을 입고 나오지만 조씨 부인은 화려한 옷과 장신구로 치장하고 등장한다. 고어투를 섞은 재치있는 대사가 '사극은 따분하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게 만든다. "없던 길 낸 것도 아닌데,뭐 그리 아팠겠소." "당신이 날 사랑한 순간,내 사랑이 변하더이다." "아니,이것이 왜 이리도 커졌답니까." "이승에선 저와 연이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사랑,무슨 가당치 않은 소리요." 성과 사랑에 대한 비유들이 옛날식 존대어투로 인해 천박하게 들리지 않을 뿐더러 때로는 웃음까지 자아낸다. 조원이나 조씨 부인이 각자의 파트너들과 벌이는 정사장면에서 적어도 한 사람은 옷을 걸치고 있다는 설정도 재미있다. 그것은 욕망으로 가득한 위선의 결합을 뜻한다. 카메라는 연애하는 남녀관계의 위상 변화를 포착한다. 예를 들어 조원이 숙부인의 정조를 뺏고 내치는 장면에선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보여준다. 조원이 높은 위치에서 마당 아래의 숙부인을 굽어보는 모습에서는 숙부인의 모습이 더욱 작아 보인다. 2일 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