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충격을 던져준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회장의 투신자살을 비롯해 최근 자살 사건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현상과 맞물려 국내 언론의 자살 보도 태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별한 공공성이 인정되지 않는 한 기사화하지 않는 선진외국 언론과 달리 국내언론은 개인 일가족의 자살사건과 같은 사적 내용을 그대로 보도하고 있는 실정. 심지어 컴퓨터 그래픽 등을 통해 사건상황을 상세히 재연하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언론의 이같은 보도 관행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일반인 자살 보도 과연 옳은가 김병후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정신질환 가운데 유일하게 감염이 되는 우울증은 자살의 핵심 원인"이라면서 "자살 보도를 자주 접하다 보면 우울한 기분이 전파되면서 자살 충동을 충분히 더 느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 사례로 인천 일가족 투신 자살 보도 이후 자녀 동반 자살 사건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일본의 대표적인 그룹 'X-재팬'의 멤버 히데의 자살 이후 수십명의 팬들이 뒤따라 자살한 경우를 그는 들었다. 김 박사는 "사회적 파장이 있는 공인의 자살이 아니라면 흥미위주로 의미를 부여해 전달하는 일반인의 자살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도 "현행 자살 보도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자살 보도 건수가 너무 많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 언론의 경우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공적인 인물이 자살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보도를 자제하고 있다는 것. 김 교수는 "국내 언론은 자살이 극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보도하고 본다"고 말했다. ■'자극적' 자살 재연 태도도 비판 자살과 관련한 TV 보도에서 컴퓨터 그래픽 등을 활용해 자살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모 방송은 투신자살한 옥상에서 밑으로 카메라의 포커스를 천천히 옮기면서 땅바닥에 이르렀을 때 카메라를 떨굼으로써 시청자들에게 투신자살을 연상케 하는 카메라기법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현행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38조는 "방송은 상황설명을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연기법의 사용을 자제해야 하며 살인, 폭력, 범죄수 법, 자살, 또는 선정적인 내용 등을 재연기법으로 다룰 때는 지나치게 구체적이거나 자극적으로 묘사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36조에선 "시청자에게 지나친 충격이나 불안감, 혐오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해선 안된다"면서 자살장면에 대한 직접적 묘사나 자살방법을 암시하는 표현의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송종길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그러나 방송심의 규정은 사문화된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김창룡 교수는 "관련 규정들을 제대로 감시하고 규제해야 할 방송위원회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위원회 관계자는 "방송심의 규정은 언론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규범일 뿐이다. 언론 스스로 준수하려는 노력 이외 달리 뾰족한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BBC의 보도 가이드라인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사건ㆍ사고 보도에 대한 프로듀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지키고 있다. "사망자들은 존경을 갖고 취급돼야 하며 꼭 그렇게 돼야 할 이유가 없는 이상 보여져서는 안된다" "얼굴이나 심각한 부상을 클로즈업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자제해야 한다" "사고나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의한 유혈 장면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뉴스에서 보도하는 사망 소식은 모두 사실이며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러한 희생자들의 프라이버시를 확실히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이라는 철학이 담겨 있다. 자살 보도에 대해서도 BBC는 "사실적 자살보도는 모방을 조장할 수 있다. 자살 방법을 컴퓨터 그래픽 등으로 상세히 묘사해서는 안된다. 자살보도시 용어선택에 신중해야 한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놓고 기자들에게 이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방송사가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것만이 문제해결의 전부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김창룡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낙종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자살 보도가 미칠 사회적 악영향을 고려해 일반인들의 개인적인 자살 사건을 보도하지 않는 언론사 스스로의 노력"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정우.홍제성 기자 js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