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비'(김현성 감독,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는 멜로와 액션의 혼합물이다. 정적으로 흐르기 쉬운 멜로물에 역동적인 액션을 섞어 관객층을 넓히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황홀함은 바래졌고 불쾌한 폭력이 난무한다. '나비'는 젊은 남녀의 순정이 세파에 퇴색되는 과정을 포착한다. 민재(김민종)와 혜미(김정은)는 고향에서 사랑의 징표로 '나비'문신을 나란히 새긴다. 이후 그들의 사랑과 인생은 오랜 세월 애벌레로 지내다 잠깐 화려하게 비상한 뒤 생애를 마감하는 진짜 나비같다. 사랑의 장애물은 80년대초 이 땅을 지배한 신군부와 삼청교육대다. 지휘관들은 폭군으로 묘사된다. 삼청교육대를 지휘하는 허대령(독고영재)은 애첩 혜미를 채찍으로 다스린다. 허대령의 심복 황대위(이종원)도 비뚤어진 욕망으로 폭력의 화신으로 돌변한다. 두 연인은 그전에 이미 사회의 폭력에 린치당한다. 민재는 '폼나게' 살기 위해 상경했지만 조폭과 제비로 전전하고 민재를 찾아나선 혜미는 인신매매단에 넘겨진다. 영화는 바닥인생의 순정이 불법 혹은 합법적인 폭력에 희생당하는 현장을 주시한다. 정의보다 폭력,자유보다 억압,이성보다 광기가 지배하던 80년대 초반의 시대상황도 고발한다. 교회에서의 참살장면은 시대적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최후의 피신공간인 교회마저 살육의 현장으로 변모함으로써 피신처는 존재하지 않는다. 멜로물이지만 베드신은 없다. 엄혹한 시대에는 남녀의 사랑도 그렇게 닿을 듯,말 듯 했다. 이문식 김승욱 엄춘배 김용건 유해진 등의 양념 연기는 높이 살 만하다. 화면의 조명전략도 눈길을 끈다. 황대위는 시종 반쪽 조명을 받는다. 문제는 이야기의 흐름이 일관성을 잃은 데 있다. 비장미를 한껏 고조시키다 돌연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장면들이 몇차례 등장한다. 이종원이 맡은 황대위의 캐릭터는 튄다. 그가 두 연인의 후원자에서 적대자로 돌변하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납득시키려는 노력을 더욱 기울였어야 할 듯 싶다. 이는 연기의 문제라기보다는 시나리오상의 결함이다. 상영중,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