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출신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내 어머니의 모든 것"(99년) "신경쇠약직전의 여인"(87년) 등에서 보통사람들이 밝히기 꺼리는 내면의 극단까지 대담하게 노출시켰다.


올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그의 신작 "그녀에게"(Talk to Her)는 기괴한 상상은 잦아 들었지만 사랑의 숭고함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극한으로 끌어 올린다.


과거와 현재,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현란한 구성을 통해 사랑과 인연의 진정성에 대한 물음을 관객들의 살갗속으로 서서히,그러나 강력하게 침투시킨다.


"그녀에게"는 코마상태(식물인간)에 빠진 두 여인을 사랑하는 두 남자의 얘기다.


외피는 멜로양식을 취하지만 남자들간의 독특한 교감이 부각되면서 스릴러와 휴먼드라마,코미디 등이 혼재돼 있다.


"발레처럼 모든 것은 복잡해.단순한 것은 없어"란 대사처럼 등장인물들의 얼핏 단순해 보이는 행동의 수면 아래에는 복잡한 사건과 인연들이 얽혀 있다.


각 사건들은 우리 상상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 넘는다.


때로는 강박적일 정도로 극단적이지만 모든 에피소드들은 우리의 감정과 사랑,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데 집중된다.


남자간호사 베니그노(하비에르 카마라)는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알리샤(레오노르 발팅)를 수발하면서 정상인처럼 말을 건넨다.


반면 여행잡지의 기자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띠)는 코마상태의 애인 리디아(로사리오 플로레스)와 교감하지 못함에 크게 낙담한다.


베니그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알리샤는 코마상태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마침내 소생한다.


사랑이란 보고 듣거나 인식하지 못하지만 느낄 수는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불행히도 베니그노의 말로는 비참하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정상인들의 한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야기 틀은 주인공 중심의 기승전결의 관습에서 벗어나 독립된 두가지 이야기를 교묘하게 수렴시키는 양식이다.


공연을 보는 두 남자(상대방을 모르는 상태)의 이야기로 출발한 뒤 각자의 연인들과의 관계를 현재 시점에서 보여준 뒤 두 남자의 만남을 계기로 각자 과거 연애담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현재 시점에서 반전하는 것이다.


삽입된 무용공연과 무성영화 등은 남성의 심리를 상징적이거나 초현실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도입부 독일 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무용 "카페뮐러"에서 춤추는 맹인여성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남자가 의자를 치워주는 장면은 고독과 우울감에 지배된다.


마지막 장면인 무용 "마주르카포고"에서 여러 남자들이 한 여인을 손으로 들어 옮기는 모습은 밝고 환상적이다.


두 공연을 지켜보는 마르코는 첫 공연에서 울지만 마지막 공연에서는 웃는다.


카메라는 뒷좌석에 앉은 알리샤를 보여주면서 마르코가 새로운 사랑을 찾을 것임을 암시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제목(원제는 그녀에게 말해)을 함축하고 있다.


그녀와의 만남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는지,때문에 그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녀에게 말해"라고 관객들은 마르코에게 마음속으로 외친다.


중간부분에 삽입된 흑백 무성영화 "쉬링킹 러버"에서 크기가 축소된 남자가 연인의 성기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식물인간상태였던 알리샤를 향한 베니그노의 성애를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앞에서 왜소함을 느끼는 남성의 심리와 연인을 향한 욕정이 맞물려 있다.


18일 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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