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오원철 당시 경제수석에게 행정수도 건설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라고 지시했다. 당시 서울의 인구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주택 환경 교통 등의 문제도 심각했지만 휴전선에서 불과 50㎞ 거리 안에 7백50만명의 시민과 육·해·공군 사령부,행정기관이 모두 있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지시를 받은 오원철 수석은 1백50여명의 국내외 전문인력을 동원,2년간의 연구 끝에 새 행정수도의 청사진을 만들었고 계획은 실행만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으로 이 야심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히스토리채널에서 오는 6일과 13일 밤 12시에 방송하는 '백지(白紙)가 되고 만 백지계획(白紙計劃)'은 70년대 행정수도 건설계획의 베일을 벗겨보는 프로그램이다. 또 30년이 지난 현재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행정수도 건설의 가능성을 당시의 상황을 통해 점쳐본다. 당시 새 행정수도의 후보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국민의 동요와 부동산 투기 등 부작용을 염려했던 것.무엇보다 잡음이 생기면 제대로 계획을 추진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오 수석과 대통령은 충청도 장기지역을 후보지로 점찍었다. 금강의 풍부한 수자원을 끼고 있는 배산임수의 지형,국토의 중심에 자리한 위치,앞으로 개발해 나갈 충분한 토지 등 새로운 행정수도로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10·26 사태가 발생했다. 백지계획을 도맡아했던 중화학공업기획단은 해체되었고 다음 정권들은 행정수도 건설과 국토재편에 대해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삽만 떠서 공사에 들어가면 되는 단계의 행정수도이전계획은 박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역사속에 묻힌 것이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