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지방에는 '경상감사 자리보다 퇴계 종손 자리가 낫다'는 말이 있다. 퇴계 이황의 직계 종손들이 5백년 동안 지켜온 퇴계 종가는 영남학풍의 구심체이자 한국의 대표적 명문 종가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최근 퇴계 종가에도 걱정거리가 생겼다. 4년 전 종부가 세상을 떠나 종가의 안주인이 없어진 것.집안 어른들과 친척들의 최대 관심사는 퇴계의 17대 종손인 이치억씨(29) 장가 보내기다. 일년에 22번 제사를 지내고 수많은 친척들과 손님들을 일일이 보살펴야 하는 퇴계 종가의 종부 자리를 어떤 신세대 규수가 받아들일 것인가? 17·18일 오후 11시에 방송하는 MBC 다큐멘터리 '한국의 종가'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문 종가를 취재,종가의 면면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퇴계 학봉 운악 고산 등 명문 종가들의 역사와 미래를 각각 다른 형식의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퇴계의 제자이자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학봉 김성일의 13대 종손 김용환씨는 현재 시가로 2백억원에 달하는 종가의 재산을 노름판과 기생집에서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훗날 그가 날려버린 것으로 알려진 재산들은 만주의 독립군들에게 비밀리에 전달된 것이 밝혀졌다. 김용환과 학봉 종가의 이야기를 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윤선도를 배출한 전남 해남군의 고산 종가. 시조 윤효정이 터를 잡은 후 5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통 계승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산 종가가 윤선도가 쓰던 메모지 한 장까지 보관하게 된 것은 바로 종부들의 덕이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로만 여겨졌던 종가의 중심에 종부들의 노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윤영관 PD는 "종가라는 독특한 전통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잊혀져 가는 한국의 정신과 문화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