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9·11사태 이후 1996년에 발간됐던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다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냉전 종식 후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갈등이 세계 질서의 핵심적인 변수가 될 것이라는 헌팅턴의 주장이 현실화된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뿌리에서 뻗어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서구인들은 이슬람 세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역사전문 히스토리 채널이 내보내는 '신의 땅 이집트'(14∼17일 오전,오후 11시 방송)는 이슬람,기독교,유대교 등의 정신적 뿌리가 된 이집트 문명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나일강 주변에 있는 여러 신전과 성지를 둘러보면 세계 인류의 다양한 정신문화가 고대 이집트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집트는 파라오가 숭배했던 다양한 신들과 이슬람교의 유적으로 가득하다. 또 유대교 성서의 기초가 되는 출애굽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집트인들 중 1천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은 원시 기독교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는 콥트교회의 성도들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마법은 현실 세계에서 신성을 모으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놀랍게도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마법의 전통은 현재의 유대교와 콥트 교회,이슬람교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뒤에 다시 부활해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었다. 부활한 영혼은 신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신과 인간의 중간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내세관도 기독교와 유대교,이슬람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화려하고 장엄한 고대문명의 꽃을 활짝 피웠던 파라오의 땅 이집트는 6세기 중반 이시스 신전의 폐쇄와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그 정신과 신비로운 매력은 현재까지도 세계의 문명속에 살아남아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