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에 드리워진 "순결이데올로기"의 그림자는 외국영화에 비해 짙다. 지난 80년대의 흥행작 "깊고 푸른밤"과 "매춘" 등에서 순결과 정절을 잃은 여주인공들은 남성들에게 모진 학대를 당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결혼이야기" 등 90년대의 대표적인 로맨틱코미디에선 애교만점의 여성이 남녀관계를 주도하는데 초점을 두느라 순결문제는 감춰졌다. 21세기초의 흥행작 "엽기적인 그녀"와 "조폭마누라"에서 두 여주인공은 남성들에게 뭇매를 가하지만 용서받는 이유중의 하나는 "순결이데올로기"를 견지하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상영중인 코미디 "색즉시공"과 함께 오는 10일 개봉하는 박광춘감독의 신작 멜로 "마들렌"은 전통적 순결관념을 완전히 뒤집는다. 두 영화의 여주인공은 다른 남성과 정사를 갖고 임신하지만 남자친구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오히려 남자친구의 정신적인 도움을 받는다. 특히 "마들렌"은 대중들의 기호에 철저히 순응하는 본격 멜로영화라는 점에서 남녀관계의 변화상을 한눈에 짐작케 한다. 이 영화는 자극적인 에피소드보다는 남녀의 미묘한 심리변화와 깔끔한 영상이 인상적이다. 영화속 커플 지석(조인성)과 희진(신민아)은 두가지 장애물에 부딪친다. 희진이 다른 남자의 아기를 임신한 것과 지석이 첫사랑 성혜와 재회한 것이다. 이 두가지는 모두 순결에 관한 물음이다. 임신은 순결을 잃은 여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며 첫사랑은 "마음의 순결"을 빼앗긴 대상이다. 여기서 지석은 자신의 첫사랑을 단념하고 희진을 선택한다. 사랑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며,떨림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기쁨과 슬픔 고통마저 공유하는 여정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제목 "마들렌"은 빵이름이며 두 주인공이 함께 씹으며 "사랑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단서다. 사랑만들기에 성격차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이 영화는 주장한다. 두 커플의 성격은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지석의 취미는 "책읽기,걷기,생각하기"다. 순간순간을 서서히 느끼며 살고 싶은 고전적인 캐릭터다. 반대로 희진은 인생을 1백m달리기처럼 질주하고 싶다. 그녀의 취미도 속도의 시대에 걸맞는 컴퓨터게임과 헤어스타일바꾸기,쇼핑 등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교제하면서 서로를 조금씩 닮는다. 박광춘 감독은 세련된 영상에 두 사람의 감정변화를 담아낸다. 자극적인 에피소드는 없고 플롯의 높낮이도 적으며 스토리 흐름도 예측가능하다. 극흐름에 가장 중요한 변수인 지석의 갈등은 그리 깊지 않다. 순수한 영혼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장애물에 대한 번민과 갈등이 더욱 치열했어야 하지 않을까. 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