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앞에선 흐르는 강물처럼,원칙앞에선 흔들림없는 바위처럼"(토마스 제퍼슨) 로드 루리 감독의 "컨텐더"(The Contender)는 미국독립선언의 기초자 토마스 제퍼슨을 존경하는 한 여성정치인의 리더십에 관한 드라마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짜깁기된 미국 정가를 무대로 지도자들이 위기에서 견지해야할 원칙과 품위의 한계를 감동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미국의 부통령이 갑자기 죽자 여성상원의원 레이니 핸슨(조안 알렌)이 여성 최초로 부통령에 지명되지만 하원의 인준을 앞두고 학창시절 그녀가 관련된 섹스스캔들이 터진다. 여론은 극도로 악화되지만 핸슨 의원은 "노코멘트"로 일관한다. 정치인은 사생활이 아니라 능력으로 검증받아야 한다는 소신에서다. 워터게이트를 다룬 "대통령의 사람들"이 국민의 알권리 입장을 견지했다면 이 영화는 오히려 지도자의 프라이버시권리에 비중을 둔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추문에 관해 거짓 여론이 부풀려지고 진실이란 얼마나 알기 어려운 것인지 상기시킨다. 핸슨 의원이 소신을 지키기 위해 정치생명을 거는 극단적인 상황은 오늘날 정치지도자들이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지켜 나아가기가 얼마나 힘겨운지를 보여준다. 원칙이란 희생을 감수해야만 견지될 수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에서도 나타난다. 핸슨 의원은 정적 러니언(게리 올드만)을 굴복시킬만한 약점을 알고 있지만 들춰내지 않고 수세에 몰리는 대목은 정치가가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명장면이다. 러니언은 여성에 대한 미국사회의 뿌리깊은 편견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청년의원 웹스터(크리스찬 슬레이터)는 바른 길을 찾기까지 실수를 거듭하는 젊은이들을 상징한다. 핸슨역의 조안 알렌은 당당하고도 정제된 연기로 작품의 품위를 높인다. 17일 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